웡춘 감독 "화려한 홍콩사회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입력 2017-07-26 16:36   수정 2017-07-26 19:12

웡춘 감독 "화려한 홍콩사회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영상자료원, 홍콩영화 특별전 개막작 '매드 월드' 연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홍콩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어두운 부분도 많이 있죠. 그런 홍콩사회의 이면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홍콩영화 '매드 월드'의 웡춘(29) 감독과 플로렌스 챈(29) 작가가 26일 한국을 찾았다.

'매드 월드'는 이날 상암동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창조적 비전:홍콩영화 1997-2017'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조울증 치료를 받던 퉁(위원라·余文落)이 병원에서 나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아버지(쩡즈웨이·曾志偉)와 함께 살면서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용을 다뤘다.

영화 속 주 무대는 홍콩 서민들이 사는 '닭장' 아파트다.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단칸방과 매 끼니를 포장 음식으로 때우는 이들 부자의 모습을 통해 홍콩 서민층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퉁은 직업을 구해보려 하지만, 정신병력 때문에 좀처럼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친구들과 주변 이웃들도 그를 경계한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아픈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영화는 퉁과 그를 바라보는 주변인의 모습을 통해 누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혹은 그 잣대는 무엇인지 묻는다.

개막식에 앞서 만난 웡춘 감독은 "친구들 앞에서는 기뻐하며 웃지만, 뒤로 돌아서면 우울해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겉모습만 화려한 홍콩사회와 닮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아니면 사람마다 사고방식이 다른 것인지 관객들이 판단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퉁의 전직이 애널리스트라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 금융 허브인 홍콩에서 애널리스트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꼽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다.

플로렌스 챈 작가는 "애널리스트는 수입도 많고 겉모습도 화려해 과거 20년간 홍콩의 모든 대학졸업생이 꿈꾸는 직업이었다"면서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홍콩사회에서 성공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드 월드'에는 가족 간의 단절, 노인 부양 문제, 빈부 격차, 삶을 억누르는 주택대출, SNS로 인한 폐해까지 홍콩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가 녹아있다. 이는 요즘 한국 사회의 이슈이기도 해 영화는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웡춘 감독은 "한국, 특히 서울도 홍콩처럼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홍콩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체성을 잃고, 남의 기대대로 살아가고 있다"며 한국 관객과 이런 문제들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홍콩시티대학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스쿨을 졸업한 웡춘 감독은 '매드 월드'가 장편 데뷔작이다. 이 작품으로 2016년 대만 금마장과 올해 홍콩금장상 시상식에서 최고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홍콩특별행정구 설립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매드월드' 이외에 'PTU'(두치펑·2003), '일대종사'(왕자웨이·2013) 등 1997년부터 최근까지 제작된 홍콩영화들이 상영된다.

홍콩영화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1990∼1994년에 정점을 이뤘다. 당시에는 연간 200∼250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을 기점으로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연간 영화 제작 편수는 60여 편 수준이다.

이번 특별전을 공동 주최한 홍콩 문화 진흥 기관 '크리에이트 홍콩'의 제리 류 대표는 홍콩 영화산업 쇠락의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기술변화, 한국 등 아시아 국가 영화의 발전 등이다.






제리 류 대표는 "과거 전성기에 홍콩영화는 말레이시아, 한국,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들 국가가 타격을 받으면서 홍콩영화 산업도 영향을 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등의 발달로 불법 복제가 늘어난 점, 그리고 한국과 태국 등 홍콩영화의 주 소비 국가들이 자국 영화 지원을 강화하면서 자국 영화 관객이 늘어난 점 등도 홍콩영화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홍콩 주권 반환을 계기로 홍콩의 유명 감독과 제작자들이 중국 본토나 할리우드로 건너가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제리 류 대표는 그러나 "1997년을 기점으로 영화 제작 편수는 줄었지만, 홍콩과 중국 합작영화가 늘면서 편당 제작비 규모와 스케일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또 홍콩영화의 부흥기를 이끌던 기성 영화인들이 빠져나가면서 홍콩의 신진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기회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홍콩 정부는 2008년 크리에이트 홍콩을 설립해 영화뿐만 아니라 건축, 광고, 음악, TV, 디자인, 디지털 콘텐츠, 만화 등 7개 분야의 콘텐츠를 지원하고 있다. '매드 월드'도 크리에이트 홍콩이 지원한 제1회 장편영화 제작 프로젝트 선정작 3편 중 하나다.

제리 류 대표는 "지금은 홍콩 영화산업이 위기이기도 하지만, 변화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홍콩 영화가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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