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혐의로 여당인사 37명 기소…현직 총리 사상 첫 법정 출석
야당들, 일제히 총리에 사퇴 요구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스페인 현직 총리가 집권당의 대형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수모를 겪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마드리드 교외의 산 페르난도 데 에르나레스 법원에 출석해 과거 당 대표 시절 국민당의 불법 정치자금 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고 엘파이스 등 현지언론이 전했다.
스페인에서 현직 총리가 법정에 출석한 것은 라호이 총리가 처음이다. 법정 출석만은 피하려던 총리는 당초 영상을 통한 원격증언을 하려고 했지만, 법원은 총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라호이 총리가 현직 정부 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한 것은 그가 이끄는 스페인 국민당이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 스캔들은 스페인의 기업인들과 국민당 소속의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전직 재무장관, 당직자 등 37명이 뇌물수수와 불법 돈세탁, 탈세 등의 혐의로 무더기 기소된 이른바 '귀르텔 사건'이다.
국민당 인사들은 기업인 프란치스코 코레아 등으로부터 각종 공공계약 관련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코레아가 경찰에 체포된 뒤부터 조금씩 전모가 드러내고 있는 이 스캔들은 스페인 역사상 최대 부패사건으로 꼽힌다.
라호이 총리는 문제의 기업인 코레아가 한창 정치권에 검은 돈을 뿌리고 다닐 무렵인 2003년과 2004년에 당의 부대표와 대표를 지내 의혹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아직 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날 그는 법정 증언대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당시 총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계획이 가동된 사실을 알았느냐" 등의 물음에 모두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나는 당의 자금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코레아를 만난 적도 없으며 오히려 그가 국민당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못하도록 그와 당이 맺은 모든 계약을 파기하라고 당 사무처에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국민당의 부패 스캔들은 현 국민당과 현 중도우파 정권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제1당에 오르긴 했지만, 부패 스캔들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해 신생정당들에 의석을 상당수 내줘야 했다. 이 때문에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뒤 스페인에서 30년간 이어진 좌우정당의 양당체제도 무너졌다.
지난달에는 극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부패 스캔들을 이유로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밀어붙였다가 표결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라호이 총리가 법정 증언을 마치자 중도좌파 사회당은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고, 지난달 불신임 표결을 주도했던 좌파정당 포데모스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법정 밖에서도 성난 시위대가 모여 "마피아는 떠나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정의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와 여당의 부패를 비난했다.
한편, 총리의 첫 법정출석에 대해 '특혜'라는 비판도 나왔다. 라호이 총리는 이날 보통의 법정 증인들이 출석했을 때 판사들을 마주보는 자리가 아닌, 법정 앞쪽에서 판사들과 나란히 앉아 같은 높이로 특별히 마련된 자리에 앉아 증언했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