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 작업이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27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행정조직 개편의 하나로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PCGG는 1986년 '피플파워'로 불리는 민중봉기로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이 사퇴한 뒤 그와 가족들의 부정축재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설치됐다.
마르코스 일가는 100억 달러(약 11조1천억 원) 규모의 부정 축재를 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중 약 34억 달러(약 3조8천억 원)가 지금까지 회수됐다.
벤자민 디오크노 예산장관은 "PCGG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며 "이 기구를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법무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친두테르테 의원들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PCGG가 폐지되면 반 고흐, 피카소, 모네 등 마르코스 일가가 사들여 은닉한 것으로 알려진 수백 점의 명화를 비롯한 나머지 부정축재 재산의 환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가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 공직에 있었던 점을 들어 마르코스 가족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일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PCGG는 전임 정부 때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의 보석 컬렉션 760여 점을 경매해 그 수익금을 국고로 환수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작년 6월 말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들 보석 대부분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인 '사치의 여왕' 이멜다가 소장했다가 몰수당한 것으로, 2015년 11월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감정 결과 평가액이 최소 10억 페소(약 220억 원)에 달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작년 11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하도록 해 마르코스 독재 치하 피해자들과 인권단체, 야당의 반발을 샀다.
필리핀 인권단체연합 '아이디펜드'의 헤안 엔리케스 대변인은 "현 정부가 필리핀 국민에 대한 마르코스 일가의 책임을 면제해주려고 한다"고 AFP 통신에 말했다.
독재유산 청산이 뒤로 밀리는 가운데 작년 5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해 박빙의 대결을 벌이다가 낙선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가 두테르테 대통령의 '후원'에 힘입어 정치적 재기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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