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4·3수형 피해자 보고서 나와

입력 2017-07-27 15:16   수정 2017-07-27 15:29

"군사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4·3수형 피해자 보고서 나와

제주4·3도민연대, 인천형무소 수형 희생자 보고회 증언 등 엮어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아버지는 군인들에게 잡혀 총살당했고 나는 폭도로 몰려 잡혀갔다"

제주4·3 당시 형무소에 억울하게 끌려간 수형 피해자 중 생존자들이 보고회에서 증언한 역사가 자료집으로 발간됐다.

제주4·3도민연대는 지난 3월 28일 열린 4·3역사 증언 및 제주4·3 인천형무소 수형 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의 자료집인 '4·3당시 우리는 군사재판조차 받지 못했다'를 발간했다고 27일 밝혔다.

4·3수형 피해자는 국가기록원 수형인명부에 2천530명이 등재돼 있다. 이들은 목포·전주·대전·인천·서대문 등 형무소 14곳에 분산돼 수감됐다.




이 중 인천형무소 4·3수형인은 14세부터 19세까지 소년 408명이다. 형량은 징역 1년부터 사형까지 선고됐다.

수형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군부대나 경찰관서에 끌려간 뒤 투옥됐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상당수가 행방불명됐다.

사태가 진정된 직후 인천형무소에서 13명이 살아 돌아왔으나 현재 10명만 생존해 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억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평생을 살아왔다. 이들의 자녀들은 연좌제로 인해 공무원 임용이 불가능했다.

자료집에는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던 현창용·박동수·양근방·양일화 씨의 증언이 실렸다.

체포경위, 조사상황, 수용장소, 재판 여부, 수감 이후 상황 등 억울한 사연이 구구절절이 수록됐다. 증언은 제주어로 했으나 보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표준어로 옮겨 실었다.

4·3당시 인천형무소 수형생존자 및 유족·지인에 대한 설문조사 등도 자료집에서 볼 수 있다.

설문조사는 인천형무소 수형생존자 및 유족·지인 361명을 대상으로 2014년 4∼12월과 2015년 9∼12월 등 2차에 걸쳐 진행됐다. 전체 문항에 대해 응답자 전원이 답하지 않고 일부만 답해도 결과로 도출했다.

128명은 수감 전 재판 받지 않았다거나 재판 진행 여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했고, 재판을 받았더라도 2명은 임시 수용소인 주정공장에서, 4명은 제주경찰서 등에서 진행했다고 답했다.

재판 결과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한 64명 중 62명(96.9%)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4·3도민연대 관계자는 "수형인명부는 4·3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에 의한 결과를 기재한 문서로 알려졌으나 수형인 상당수가 재판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번 자료집이 수형인명부에 대한 이해를 돕고 행방불명자로 남아 있는 수형 피해자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4천,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현재 잠정 보고됐다.

ko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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