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철녀' 호스주에 0.65초 뒤져 4위로 골인
선수가 꺼리는 8번 레인에서 역영…한국 신기록까지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연일 한국 수영에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안세현(22·SK텔레콤)에게 '8번 레인'이라는 제약은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모든 선수가 꺼린다는 수영장 최외곽에서 안세현은 묵묵히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했다. 자신의 옆에 있는 7명의 선수가 어떤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은 상황이 '도전자' 안세현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안세현은 28일 오전(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아레나에서 열린 2017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접영 200m 결승에서 2분06초67로 골인해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다.
최종 순위는 역대 한국 여자 선수 최고인 4위다.
안세현은 자신의 종전 최고 기록인 2분07초54를 무려 0.87초나 앞질렀고, 최혜라가 2010년 전국체전에서 세운 한국 기록 2분07초22보다도 0.55초 이른 시간에 경기를 마쳤다.
원래 안세현의 주 종목은 접영 100m다. 안세현은 이번 대회에서만 접영 100m 한국 신기록을 두 차례 새로 쓰며 메이저대회(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5위에 올랐다.
그래서 접영 200m에 대한 기대감은 100m보다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준결승 8위로 간신히 결승 티켓을 얻어 8번 레인에 배정된 안세현이 4위로 골인할 거라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안세현이 경기한 8번 레인은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여러모로 불리하다. 일단 옆에 선수가 없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고, 거센 물살까지 이겨내야 해 체력 부담까지 크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새 역사를 쓴 장면은 6년 전 박태환(인천시청)을 떠올리게 한다.
박태환은 2011년 중국 상하이 대회 남자 자유형 400m 준결승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 결승을 1레인에 배치됐다.
이때 초인적인 힘과 집중력을 보여준 박태환은 라이벌 쑨양(중국), 파울 비더만(독일) 등을 1초 이상 제치며 자신의 세계선수권대회 두 번째 금메달을 차지했다.
안세현은 박태환과 달리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첫 50m 지점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등 경쟁력을 보여주며 전망을 밝혔다.
이날 우승은 미렐라 벨몬테(스페인·2분05초26), 준우승은 프란치스카 헨트케(독일·2분05초39), 3위는 카틴카 호스주(헝가리·2분06초26)가 각각 차지했다.
이중 호스주는 세계 최정상 여자 수영선수로 지난해 리우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워낙 많은 종목에 참가해 별명도 '철녀'다.
안세현과 호스주의 격차는 0.65초. 공교롭게도 안세현이 8번, 호스주가 7번 레인에서 경기했다. 안세현은 50~100m 지점부터는 줄곧 호스주만 바라보며 역영했지만, 끝내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수영역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안세현의 전성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안세현은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올라섰고, 2019년 광주 세계선수권대회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메달까지 노릴 자격을 갖췄다.
안세현과 호스주의 격차 0.65초는 시상대까지 남은 거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촌각을 다투는 수영에서 적은 격차는 아니지만, 이미 안세현은 이날 접영 200m에서 자신의 기록을 0.87초 앞당겼다.
'박태환 이후'를 고민하던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희망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부터 안세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적'이 아닌 '현실'이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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