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시인, 월간 현대문학에 기고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살아남아 있는 자로선 뱉기 힘든 말이지만, 그 말씀이 전하는 뜻을 아주 감지하지 못하는 바는 아닌 고로, 기꺼운 마음으로 전해드린다. 죽음을 감축드립니다."
평생 천착해온 죽음과 끝내 마주한 소설가 박상륭(1940∼2017)에게 건네는 시인 강정의 마지막 말이다.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 등의 작품을 통해 도저한 철학·종교적 사유를 풀어내고 지난 1일 캐나다에서 별세했다. 시인은 월간 현대문학 8월호(통권 752호)에 '죽음의 원 펀치'라는 제목의 송사를 기고했다.
1969년 캐나다로 이주한 박상륭은 일 년에 한 차례씩 귀국해 국내에 머무르며 소수 지인과 교류했다. 시인은 9년 전쯤 여름 광화문에서 한 귀국 환영모임을 떠올렸다. 먼저 일어나야 할 사정을 밝힌 뒤 1차 자리를 정리하는데 박상륭이 말했다고 한다.
"강 선생, 굳이 가야만 하신다면 늙은네 주먹 한 대 받고 가시오."
'죽음의 한 연구'의 격투 장면이 떠오른 시인은 단전에 힘을 주고 주먹을 받았다. "고의로 많은 힘을 쏟진 않았지만, 심중 결기와 사심 없는 질정이 혈관 깊숙이 잔향을 남기는, 매우 묵직한 펀치였다." 시인은 "그 이후, 몸 중앙에 선생이 아니면 누구도 다시 죄어줄 수 없을 나사못 하나가 박혀버렸다"고 전했다.
고인의 부인 배유자 여사는 이달 12일 밤 한국의 몇몇 지인들에게 박상륭의 별세 소식을 이메일로 알렸다. 박상륭은 "장례식도 하지 말라, 나를 위해 울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차라리 축하나 하라"고 했다고 시인은 전했다.
시인은 "이제는 너 자신의 허물과 오욕을 되새김질하고 스스로 나사못을 죄이며 너만의 죽음을 연구하고 완수하라는 숙제를 남기셨다"며 이렇게 썼다.
"결국 삶의 모든 불가능성 자체에 투신하는 게 문학의 궁극이라면 그 어떤 헛된 문명(文名)이나 오명에도 귀를 씻은 채, 선생의 귀한 말씀마저 바람에 날려 보낸 채, 그저 명치에 새겨진 통증만을 유일한 진심이라 되삼키며 계속 몸과 마음을 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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