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연대기①] 계급도 폭력도 없이…9천년 전 농경 '이상향'

입력 2017-07-30 12:30  

[아나톨리아 연대기①] 계급도 폭력도 없이…9천년 전 농경 '이상향'

발굴단장 "차탈회이위크, 모두가 평등"…"공동체 전체가 한 가족"

"집 안에 시신 매장"…"기억·영속성에 집착"

[※편집자주 = 올해로 한국과 터키가 수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주(駐)터키 한국대사관과 터키 문화관광부는 이를 기념해 한국의 전문가를 초청해 문화·학술 교류행사인 '아나톨리아 오디세이'(터키어, 아나돌루 오디세)를 개최했습니다. 한국 대표단이 9일간 돌아본 아나톨리아 지역의 역사·고고학 현장을 소개하고 양국 관계의 연원을 살펴보는 기사를 '아나톨리아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송고합니다.]






(차탈회이위크<터키>=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그곳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형제애의 세계,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그곳을요'

가수 존 레넌은 '이매진'(Imagine)에서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묘사하면서, "그런 세상을 바라는 내가 몽상가로 보이겠죠"라고 노래했다.

19세기 말 혁명가나 1960년대 히피의 이상에나 등장할 법한 유토피아를 9천년 전 아나톨리아 중남부에 있는 차탈회이위크(Catalhoyuk) 유적 발굴현장에서 실제로 만났다.

아나톨리아는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유럽 쪽으로 튀어나온 반도로, 지금의 터키땅 아시아 지역에 해당한다.

차탈회이위크는 지금으로부터 약 9천년 전부터 번성한 신석기∼청동기 거주지 유적이다. 가장 번성했을 때에는 8천명 가량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차탈회이위크 발굴 현장은 선사시대 유적에 관한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는 곳이다.

한국에서 신석기 유적지라 하면 너른 벌판 여기저기에 도구와 토기가 흩어진 모습이 떠오르지만 이곳은 집들이 마치 블록쌓기 장난감이나 아파트처럼 여러 층이 포개져 있는 구조다.

거리 공간이 없이 집들이 모두 붙어 있었고, 주민들은 천장에 뚫린 문으로 출입했다.

한 가옥의 수명이 다하면 벽과 천장을 허물어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다시 집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층층이 포개진 구조가 형성됐다. 발굴단은 집을 짓고 허물기를 25회 반복한 곳도 찾아냈다.

발굴 전 언덕처럼 보인 지형은 수천 년간 가옥이 겹겹이 쌓인 결과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이다.

발굴이 아직 진행 중인 '남쪽 거주지'는 맨 아래에서부터 지표면까지 기원전 7천100년부터 6천100년 사이 약 1천년의 시공간을 보여준다.

구성원이 사망하면 시신을 그들이 살던 집 북쪽이나 동쪽 편에 묻었다. 삶과 죽음이, 거주와 매장이 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주거·매장 방식에 따라 한 장소에서 무려 62구의 시신이 나오기도 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인류가 농경시대에 접어들어 잉여생산이 이뤄지면서 계급이 형성되고 사회구조가 발달한 것으로 본다.

차탈회이위크는 이러한 사관을 뒤엎는 곳이다.

안정적인 농경사회이지만 계급도, 우두머리도, 사유재산도 없었다. 남녀의 위계구조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부터 25년간 발굴을 이끈 영국인 이언 호더 교수(스탠퍼드대학)는 모든 가옥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고, 지위를 드러내기 마련인 장례 방식에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발굴된 시신의 유전자 분석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한 가옥에 함께 거주한 5∼10명의 구성원은 유전적으로 가족이 아니었다. 함께 살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가족과는 달랐다. 남자들이 한 집에 계속 거주한 반면 여자는 일생에 걸쳐 여러 집을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사회 구성원이 혈연에 관계없이 가족을 이루고 공동으로 육아를 담당했다. 차탈회이위크 전체가 거대한 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호더 교수는 "차탈회이위크는 평등사회이고, 전 주민이 하나의 가족이자 하나의 공동체였다"고 말했다.






시신에서는 무기나 흉기로 사망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뚜렷한 분쟁이나 폭력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대표단의 김종일 교수(서울대)는 "최근 차탈회이위크나 이보다 더 오래된 동부 괴베클리테페에서 나온 고고학적 발견은, '물질·기술적인 도약이 사회 발달의 원동력이고 종교와 문화는 그에 종속적'이라는 마르크스식 사관에 이견을 제기한다"면서 "종교나 제의가 사회 계급을 유지하는 도구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원동력이자 중추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차탈회이위크로부터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아시으클르회이위크(Asiklihoyuk)에는 시기적으로 1천년 앞서며 유사한 주택 구조를 보이는 거주지 유적이 있다. 신석기 '이상향'이 희귀한 사례가 아니라 아타톨리아 중남부 일대에 여러 곳 분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평등사회 차탈회이위크도 수천년을 거치며 점차 물질에 눈을 뜬다.

유적 상층부에서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지모신'(地母神) 테라코타가 출토됐다. 앙카라 소재 아나톨리아문명 박물관에서 본 '차탈회이위크 비너스'는 여느 농경문명의 여신 형태와 유사한, 출산하는 풍만한 여성의 모습이다.

존 레넌이 노래한 '천국이 없는' 이상향과 달리 차탈회이위크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중시했다.

망자의 시신을 깔고 살았고, 집 아래 묻혀 있는 제의(祭儀) 상징물을 파내어 쓰기도 했다.

그들은 왜 죽은 자와 한 공간에 살았을까.

B.C.7천년의 차탈회이위크를 25년에 걸쳐 되살려낸 호더 교수는 이들이 '기억'과 '지속', '연결(networking)'에 집착했다고 설명했다.

호더 교수는 "차탈회이위크인들은 먼저 떠난 이들을 계속 기억하고자 했다"면서 "혈연과 무관하게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정서적 결속이 강한 사람들이었다"고 추측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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