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탐관오리는 죽을 때도 부패…망나니에게 뇌물

입력 2017-08-01 08:00  

[숨은 역사 2cm] 탐관오리는 죽을 때도 부패…망나니에게 뇌물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산불진화 장비를 납품하는 영세 기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갑질까지 일삼은 공무원들이 서울경찰청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국 지자체 공무원 23명은 산불진화 장비를 구매하면서 실제 매입량보다 부풀려 계약하고서 차액을 챙기거나 뇌물을 받다가 불구속 입건됐다.

납품업체에 술값을 대신 내게 하거나 장거리 이동 때 승용차 대기를 요구하는 등 갑질한 사실도 드러났다.

광역시 공무원 2명은 산하기관 여직원을 데리고 외국으로 출장 가서 성추행했다가 최근 직위 해제됐다.

경기도에서는 공적 비용을 민간인에게 떠넘기거나 규정이나 절차를 까다롭게 해석해 인허가 등을 거부한 시군 공무원 34명을 적발했다.

하지만 8명만 징계하고 나머지는 훈계나 시정·주의, 변상명령 등 처분만 내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부정부패나 갑질 등에 연루된 공무원은 대부분 민간인을 직접 접촉하는 중·하급 실무직원이다.

조선 시대에 백성을 괴롭힌 탐관오리도 대부분 말단 관리였다.

부패 관리를 최고 참수형으로 다스리기도 했으나 뇌물과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주범은 지방 관청의 최하급 관리로 행정 실무를 맡은 아전이다.

세금 징수나 지방 잡무 등을 하는 아전의 급여는 한 푼도 없어 이들은 비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사정에 밝은 아전의 부패 탓에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정부 곳간이 늘 부족했는데도 수령은 좀처럼 관여하지 않았다.

아전들이 일손을 놓아버리면 행정업무가 마비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수수방관한 것이다.

아전과 별도로 다른 분야에서 백성을 괴롭힌 말단 관리도 많았다.

김인호 박사가 쓴 '조선의 9급 관원들, 하찮으나 존엄한' 제목의 역사서에 이들의 실태가 자세하게 나온다.

일례로 소유는 사헌부(검찰) 소속 최하급 직원인데도 권력이 막강했다. 풍속이나 금지령 위반 단속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태종 시절에 소유들은 종이돈인 저화를 보급하려는 정부 방침을 장사꾼이 제대로 이행하는지 점검하려고 시장에 나갔다가 온갖 횡포를 부렸다는 기록이 있다.






왕실 종친이나 공신, 고위 관료 등에게 배속돼 종노릇하던 구사의 갑질도 만만찮았다.

이들은 상전 행차 때 "길을 비켜라, 00의 행차니라"라고 외치는 일이나 공적 심부름, 잡무 등을 주로 했다.

왕이 하사하는 구사 숫자는 대군(왕자) 10명, 정1품 9명, 종1품 8명 등 권력 순위가 내려갈수록 줄어든다.

구사는 상전의 위세를 믿고 소유를 두들겨 패는 등 호가호위했으나 그다지 선호하는 직업은 아니었다.

못된 관리를 만나면 돈놀이 심부름을 다니거나 무거운 돌을 옮기는 등 사노비처럼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전을 대신해 곤장이나 채찍을 맞기도 했다.

백성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하급 관리는 호조 소속의 산원이다.

계산 전문가인 산원은 일반 관리처럼 말을 타거나 사모를 쓰는 특권을 누렸다.

토지 면적과 농작물 수확량을 측정하고 정부 물품을 관리하는 이들이 백성 위에 군림한 것은 재산과 세금에 미치는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세금 액수 등이 달라지므로 뇌물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산원들이 회계를 조작해 세금(쌀)을 횡령하거나 상납하는 사례도 잦았다.

인조 종친 이륵은 자택을 지을 때 산원 등에게 은 수백 냥을 상납받아 건축비로 충당했다.

왕실 말단 공무원인 중금은 아주 특이한 직업이다.

임금 행차 때 "주상 전하 납시오"라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선발 자격은 매우 까다로웠다.

용모가 단정하고 목소리가 맑아야 하며 나이는 15세 이하여야 한다.

변성기에 해당하는 16세가 되면 정년을 맞는다.

연산군 때 중금끼리 동성애를 한 사실이 발각돼 홍역을 치른 일도 있다.

중금 두 명이 궁궐 방에서 몰래 만나 음란한 짓을 하다가 "위에서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가"라며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 화근이었다.

이 말을 엿들은 동료가 밀고하자 연산군은 자신을 겨냥한 발언으로 여겨 두 사람 모두 처형하도록 명령한다.

그때 영의정 성준과 도승지(비서실장) 박열이 나서지 않았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장난삼아 한 말이니 죽이지는 말자고 핵심 참모들이 애원한 덕에 가까스로 감형된다.

중금 2명은 곤장 100대를 맞고 가족은 변방으로 쫓겨나는 것으로 설화 사건은 일단락된다.

중금은 16세 때 8품 벼슬까지 승진할 수 있어 조기 은퇴라는 약점에도 인기가 높았다.

양반이 어렵사리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성적이 나쁘면 첫 벼슬이 8품 이하라는 점에서 평민이나 노비 출신에게 중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중금은 세조 때 폐지됐다가 성종 때 되살아난다.

왕이 이동할 때 중금의 목소리가 없으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의녀는 국가가 인정한 유일한 여성 전문직이었는데도 대우는 형편없었다.

관청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10~15세 공노비 중에서 뽑는 의녀는 교육 과정부터 험난했다.

밤낮없이 공부한 뒤 매달 시험을 치르고 연말에는 종합시험을 본다. 3년간 시험 성적이 나쁘면 공노비로 되돌아간다.

관청 잔치에 동원돼 기생처럼 접대하기도 한다.

일반 의료기관인 혜민서 관리는 의녀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밤에는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호랑이를 잡는 착호갑사는 매우 위험한 직업인데도 노비들은 선호했다. 신분 상승 통로였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 후 약 470년 동안 호랑이가 937회 나타나 3천989명이 숨지거나 다칠 정도로 호환 문제가 심각했다.

초기에는 무예가 출중한 군인을 대상으로 착호갑사를 뽑았으나 지원자가 적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나중에 선발 대상에 노비까지 넣고 호랑이를 잡으면 3계급 승진하는 특진제도를 신설하면서 정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 사회 최하층에서 나랏일을 거든 직업은 오작인과 망나니다.

오작인은 타살로 의심되거나 사망 원인이 불명확한 시신의 상태를 조사하는 검시관이다.

이들이 매수돼 거짓 보고서를 꾸며 약자에게 불리하도록 범죄를 조작하다가 들통 난 일이 종종 있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망나니의 갑질도 간단치 않았다

망나니는 사람을 죽이는 악역이라 모집이 쉽지 않았다. 일반인 채용이 모자라면 사형수로 부족한 인원을 채웠다.

망나니는 사형수 가족에게 종종 돈을 요구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칠 때 칼을 여러 번 휘둘러 끔찍한 고통을 준다는 소문 탓에 가족은 금품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조선 권력 끝자락에서 행정부 실핏줄 역할을 한 말단 관료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상관에게 천시당하면서도 민초들에게는 수탈 주체였다.

뿌리까지 오염된 조선 공직사회에 대한 극약 처방으로 참형과 함께 팽형도 활용했다.

팽형은 물이나 기름이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집어넣어 죽이는 형벌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성행했다.

워낙 잔인한 데다 대형 가마솥을 준비하고 시체 처리가 어려운 문제점 등이 많아 후대로 가면서 다른 형벌로 대체된다.






조선의 팽형은 중국과 달리 사람을 실제로 삶아 죽이지 않고 약식으로 운영됐다.

백성의 공분을 사는 부패 관리가 체포되면 서울 종로 한복판 대형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시늉만 함으로써 형 집행을 끝낸다.

죄인을 빈 가마솥에 넣어 뚜껑을 닫고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가족은 실제로 상을 당한 것처럼 통곡한다.

죄인이 밖으로 나오면 멀쩡하게 살아있지만, 호적과 족보에는 사망자로 등록된다.

가족은 장사를 치르고 시묘살이를 해야 하며 매년 제사도 올린다.

부인이 출산이라도 하면 과부가 아이를 낳은 꼴이 돼 온갖 수모를 당한다. 아이는 사생아 취급을 받는다.

팽형을 당하면 목숨만 부지할 뿐 사회적으로는 매장된다.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서 이런 고통을 당하면 대부분 자결했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에게는 분경법을 적용했다.

당상관(정3품 이상)과 사헌부, 사간원 관리의 자택에 8촌 이내 친척이나 6촌 이내 외척 또는 처가 식구의 상시 출입을 금지한 제도다.

위반 때는 곤장 100대와 3천 리 유배형을 내린다. 인사 청탁 등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들은 음식을 대접받거나 사소한 선물을 챙겨도 벌을 받는다. 분경법은 2016년 9월 시행한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법)과 여러모로 닮았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족과 왕실 외척의 부패로 분경법은 무력화한다.

비선 실세들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공직기강이 와르르 무너진 탓이다.

윗물이 썩었으니 아랫물이 맑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태껏 공직사회 부패가 반복되고 갑질이 이어진 데는 솜방망이 처벌과 법규 미비가 한몫했다.

2016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뇌물수수나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횡령 등 혐의로 적발된 공무원 가운데 4.9%만 재판에 넘어갔다.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법망이 워낙 엉성하고 감찰 및 수사가 부실한 탓에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단죄를 피한 것이다.

검찰이 뇌물 증거를 어렵사리 확보해서 공직자를 기소하더라도 약 40%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이 근무 경력 등만 따져 "오랫동안 공무를 성실히 수행해왔다"는 식으로 평가해 형량 결정에 반영하는 관행 탓이다.

구멍이 뻥뻥 뚫린 반부패 관련 법률을 개선하고 공직 부패를 엄벌하도록 법원 양형제도를 서둘러 손질해야 하는 이유다.

공무원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시민 감시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처벌만으로 공직사회를 정화할 수는 없다.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야 한다.






민원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공무원에게는 특별 승진·휴가·포상 등을 배려해야 한다.

인허가 신청서 접수 후 일정 시간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승인하는 제도는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사안일한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는데도 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처벌을 피한다.

인허가 신청을 처리 기한까지 방치하다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보완을 요구하는 일을 수차례 반복해도 민원인은 속수무책이다.

탐관오리의 목을 베는 참형이나 1천 원만 받아도 처벌하는 박원순 법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청렴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악취가 나는 하수도 물에는 화학약품을 뿌려 철저히 소독하되 꽁꽁 얼어붙은 물은 온기를 불어넣어서 흐르게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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