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채권의 망령'서 벗어나…"버티기에 면죄부" 논란도

입력 2017-07-31 18:45   수정 2017-07-31 20:08

'죽은 채권의 망령'서 벗어나…"버티기에 면죄부" 논란도

"연장전 들어가도 회수율 미미" vs "성실한 채무자는 바보냐"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이른바 '죽은 채권'으로 불렸다. 금융회사가 빚 독촉을 포기함으로써 채무자에게 상법상 '시효의 이익'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은 지금까지 죽은 채권을 땅에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발적으로 갚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 빚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도 포기했다는 내부 책임론 등이 이유였다.

금융위원회가 31일 죽은 채권을 소각하기로 한 것은 이처럼 관행적인 부실채권 관리 업무를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을 포함했다.

채권·채무관계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그러나 5년이 가까워지면 금융회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0년 단위로 연장, 재연장이 이뤄져 왔다.

통상 25년까지 연장돼도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채권 추심을 포기했다. 이렇게 해서 시효가 완성된 금융회사의 채권은 공공·민간을 합쳐 214만3천 명, 25조7천억 원이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소각되면 불법 채권 추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원칙적으로 채권 추심이 금지되지만, 이를 넘겨받은 채권추심업체가 시효 이후에도 불법 추심을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금융위가 이날 소개한 한 피해 사례에서 A 씨는 한 채권추심업체가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더라도 원금을 대폭 감면해준다"는 안내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미끼였다. A 씨의 일부 변제는 빚을 갚겠다는 의사로 간주해 채권·채무 관계는 되살아났고, 그는 혹독한 빚 독촉을 다시 받게 됐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소각으로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농업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B 씨의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그러나 최근 금융거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당 금융회사를 찾아간 B 씨는 "과거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갚을 필요는 없지만, 해당 연체기록이 여전히 남아있어 신규 거래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채권 추심은 받지 않지만, 금융회사 전산원장에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각으로 그에 대한 기록은 '채무 없음'이 되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실질적인 효과뿐 아니라 채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회수율이 지극히 낮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굳이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하는 것은 엄연히 갚아야 하는 빚을 탕감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정권 출범 때마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신용 대사면'은 자칫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7천억 원을 들여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72만 명의 연체이자를 탕감하고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 연대보증의 덫에 걸린 신용불량자 11만 명을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버티면 다음 대선 때 탕감해준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신뢰를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고, 성실하게 빚을 갚는 채무자와의 형평성도 깨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금융위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경우 법에 따라 더는 채권자의 상환 청구권이 없고, 채무자는 상환의무가 없다"며 "채무자의 상환의무가 없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 우려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문제를 금융위나 금융회사가 뒤늦게 깨달은 것도 아닌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분히 정권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지적에선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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