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줄줄'·벽 '쩍쩍'…새 아파트 하자 분쟁 6년새 56배 급증

입력 2017-08-02 05:33   수정 2017-08-02 09:18

물 '줄줄'·벽 '쩍쩍'…새 아파트 하자 분쟁 6년새 56배 급증

입주민-건설사 잇단 갈등 소송전 비화…아파트 역사 반세기 넘어도 여전

지자체 대책 내놓지만 일부 그쳐…후분양제 도입 등 제도 검토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새로 지은 아파트에 각종 하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억원을 들여 입주한 새 아파트에서 물이 줄줄 새고 벽에 금이 쩍쩍 가는가 하면 기둥에 균열이 생긴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입주한 주민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당연히 입주민과 건설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입주민의 하자보수 요청에 건설사들이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많아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한다.

전문가들은 오늘과 같은 형태의 단지형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한 지 5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 "이게 새 아파트야?"…'삐걱삐걱'·'줄줄'·'쩍쩍' 하자투성이

5천600억원이 투입돼 2013년 전남 순천시 해룡명 신대지구에 조성된 중흥건설 아파트.

현재 30층짜리 아파트 82개 동, 5개 단지에 7천376가구가 입주를 마쳤고, 3개 단지 2천831가구는 분양이 완료돼 공사가 한창이다.

중흥건설이 '명품 주거단지'로 홍보하는 곳이다. 외국인 거주자 유치를 표방하며 택지와 공공시설을 27대 73의 비율로 맞추고 18홀 골프장도 단지 동쪽에 조성했다.

그러나 정작 신대지구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은 수년째 부실시공으로 인한 각종 하자에 시달리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집 거실과 주방 바닥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가 하면 화장실 벽의 타일이 떨어져 나간 경우도 적지 않다.

아파트 외벽 곳곳에 금이 가고, 심지어 외벽 마감재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볼썽사납다.

주민 김모(54)씨는 "집집이 바닥 소음과 타일 부실시공 문제로 불만이 폭발할 지경인데도 하자보수를 신속하게 해주지 않고 있다"며 "명품도시를 꿈꾸며 입주했는데,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순천시가 지난해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과 합동으로 신대지구 아파트 하자 조사를 해보니 접수된 것만 무려 18만 건에 이르렀다.

이런데도 사업자인 중흥건설이 제대로 하자보수를 해주지 않자 1단지 1천466가구는 지난해 4월 70억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충북의 대표적인 건설업체인 대원은 청주 오송 대원칸타빌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와 하자보수 문제를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1년 3월 입주 이래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곳곳에 균열, 누수 등의 하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시공사가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하거나 부실시공해 이런 하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원 측은 거부했다.

입주민들은 2015년 9월 대원을 상대로 하자보수금에 해당하는 1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대원 측의 70% 책임을 인정, 7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원은 이에 불복, 항소한 상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31일 "부실시공이라는 고질병을 뿌리 뽑겠다"고 이례적으로 공개 지목한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A23블록 부영아파트도 하자가 심각하다.

부영아파트는 올 3월 6일 화성시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아 지금까지 18개 동, 1천316가구 가운데 1천135가구가 입주를 끝냈다.

그러나 이곳도 하자투성이였다. 바닥에 금이 가고 화장실에는 물이 샌다.

주민들이 하자 민원을 제기하자 화성시가 "책임지고 하자 보수를 하겠다"는 부영의 말을 믿고 사용검사 승인을 내줬으나 헛말이었다.

사용검사 승인 이후 지난달 28일까지 부영아파트에서 발생한 하자보수 신청은 7만8천962건으로 집계됐다.

다른 일반 아파트의 하자보수 신청이 2만∼3만건인 것에 비하면 2∼3배나 많은 건수다.

또 보통 사용승인 후 2개월가량 집중적으로 하자보수를 하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 부영은 5개월이 지나도록 하자보수를 끝내지 않아 입주민의 비난을 사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하가지구 내에 있는 부영 임대아파트(860가구)도 입주를 시작한 2014년 10월부터 하자 민원이 쏟아졌다.

지하주차장 벽에 균열이 생기고 베란다·창틀에 문제가 있음에도 부영의 하자보수가 지연되자 주민들은 대책위를 발족, 부영 측과 지난해까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특히 부영아파트가 연간 임대료 최대 인상액(5%)을 고수하면서 영세 입주민들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전주시가 올 상반기부터 시민단체 등과 연대, 부영의 연간 임대료 5% 인상을 불공정행위로 간주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 하자분쟁 조정 6년 새 56배 급증…해법은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역사는 50년이 넘었다.

국내 첫 단지형 아파트는 1962∼1964년 서울 마포에 지어진 마포아파트다. 지금 같은 아파트 문화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기술로 1942년 지어진 경성(지금의 서울) 혜화아파트도 있지만 현재의 아파트와는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조금 다르다.

이렇듯 건설 기술이 반세기 이상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여전히 하자투성이 아파트가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파트 하자로 인한 입주민 피해를 구제하는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69건에 불과하던 하자보수 분쟁 신고 건수는 지난해 3천880건으로 6년 새 56배 늘었다.

이처럼 하자보수에 대한 분쟁이 증가하자 국토부는 하자보수를 정당한 이유 없이 미루는 건설사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시정명령을 내려 이행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 시행령이 오는 10월 19일부터 발효되면 지자체 이행명령을 따르지 않는 시공사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입주자가 하자보수를 요청할 경우 시공사 등이 차일피일 미뤄도 강제할 방법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강력한 규제수단을 갖게 되는 셈이다.




경기도가 2006년 10월부터 전국 처음으로 시행하고 있는 '아파트 품질검수 자문단'도 하자분쟁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분야별 전문가 100명이 골조완료 후 1차, 사용검사 전 2차, 사후 점검 3차에 걸쳐 품질검수를 해 하자를 해결한다.

품질검수 자문단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파트 6천717동(44만9천994가구)에 대해 품질검수를 진행, 4만3천660건을 지적했다. 이 가운데 94%인 4만898건을 시정했다.

동탄2신도시 부영아파트도 골조완료 후 1차 품질건수에서 81건, 사용검사 전 2차 품질검수에서 130건 등 모두 211건이 지적됐다.

경기도는 현행 선분양제도가 시공사의 성실 시공을 전제로 마련된 제도인 만큼 부실시공 업체는 선분양을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늘어나는 하자민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사가 80% 이상 완료된 아파트를 보고 사는 '후분양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지난 6월 '아파트 관리 불만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22개 동 주민센터에 개별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번 부영아파트 사태를 계기로 부실시공을 근절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검토하고 대책을 만들겠다"며 "특히 다른 시·도와 공유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유 형민우 전창해 임청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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