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싱글맨 = 퀴어문학의 장을 연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1904∼1986)의 장편소설.
1962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하루, 58세 남성 대학교수인 조지의 일상과 상념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조지는 연인과 사별한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소와 마찬가지로 출근하고 강의하며 동료와 대화한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을 향한 분노와 비판을 온전히 덮어두지만은 않는다.
"스트렁크 부인, 부인이 읽는 책은 틀렸어요. 그 책에는 내가 짐을 진짜 아들, 진짜 동생, 진짜 남편, 진짜 아내의 대용품으로 생각한다고 적혀 있죠. 그러나 짐은 무엇의 대용품이 아닙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짐의 대용품도 없습니다. 어디에도요."
창비. 조동섭 옮김. 200쪽. 1만2천원.
▲ 부테스 =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69)의 음악 에세이.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은 바다에서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 죽게 만든다.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다. 오르페우스는 키타라 연주로 노랫소리를 덮어 자신과 선원들을 치명적 매혹에서 구한다. 무모한 부테스는 노랫소리를 쫓아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한다.
작가는 신화를 토대로 두 종류의 음악을 구분한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파멸의 음악',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구원의 음악'이다. 그리고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음악의 본질에 가깝다고 본다. 음악은 우리의 힘을 능가하는 유혹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물속으로 뛰어든 부테스는 본성의 솔직함을 따른 것이다.
"음악이 고통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언어에 앞서 존재하는 노랫소리는 애도에 잠긴 '길 잃은 본성'으로 다이빙한다. 무조건 뛰어내린다. 부테스가 뛰어내리듯 그저 뛰어내릴 뿐이다."
문학과지성사. 송의경 옮김. 139쪽. 1만2천원.
▲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 1998년 등단한 시인 김경후(46)의 세 번째 시집.
"많이 죽고 싶다, 잿가루보다 무수히"('불새처럼')라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아프고 쓸쓸하다. 그러나 죽음과 '없음'에 대한 열망은 무한한 자유를 향한 꿈과 맞닿는다. 시인 손택수는 추천사에 "높이도 깊이도 없이 직립한 평면의 매혹 속에 그로테스크와 서정이, 유머와 불온이, 추와 미가 행복하게 혼숙하고 있다"고 썼다.
"불가능한 사랑만 가능한/ 그게, 지금/ 벙어리 인어가 거품이 돼야 하는/ 그게, 바로, 이, 저, 그, 지금/ 46억년 전부터 나는 노래를 잃은 순간일 뿐/ 순금의 절망/ 절벽의 지금/ 썩은 하수구 썩은 인어의 내장 속 썩은 지금에겐/ 허공조차 절, 허공조차 벽/ 검은 거품까지도/ 깎고 또 깎아내린/ 절벽, 지금," ('절벽아파트―지금' 부분)
창비. 116쪽. 8천원.
▲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05년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 박생강(40)의 장편소설.
작가가 부촌의 피트니스 사우나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보고 들은 '대한민국 1%' 상류층의 허상을 풍자한다. 사우나 손님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사진이 함께 뜰 정도로 쟁쟁한 인물들. 하지만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거나 혹은 벌거벗고 나면 초라한 실제 모습을 애써 숨긴 채 살아가는 노년일 뿐이다.
"이 우아한 공간에서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헬라홀의 남자들도 그들이 꿈꾸는 1퍼센트의 찬란한 삶을 현실에서 코스프레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지도 몰랐다. 이곳에서 코스프레가 아닌 현실을 오가는 사람들은 나나 팀장 같은 사우나 매니저들이었다. 우리는 이곳의 초라한 뒷모습을 아는 사람들이자, 그 초라한 뒷모습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버둥거리는 일꾼들이었다."
나무옆의자. 252쪽. 1만3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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