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심없고 배반 도모하려는 자 겨냥한듯"…소식통들 "놀랄만한 일 아냐"
(서울=연합뉴스) 권영석 기자 = 중국은 1955년 인민해방군에 계급제를 도입하면서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당시 전공을 세우고 건국에 공헌한 인민해방군 장군에게 원수 계급을 수여하고 '중국 10대 원수'로 기린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8월1일) 경축대회 연설에서 이들 10대 원수에게 경의를 표시하면서, 서열 3위인 린뱌오(林彪)의 이름을 뺐다. 이를 두고 중국 정치권에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정계 소식통들은 지도자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은 린뱌오를 제외함으로써 자신에게 저항하거나 당의 노선을 어기는 간부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라고 풀이했다.
2일 중국과 홍콩 언론에 따르면 시 주석은 1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건군절 경축대회 행사장에서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한 공산혁명군과 인민해방군에 대한 치하의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시 주석은 "이 영광스럽고 엄숙한 순간에 우리 군을 설립하고 키워온 혁명 군인들에 대한 기억을 기리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사오치(劉少奇), 주더(朱德), 덩샤오핑(鄧小平) 등 주요 지도자들의 이름을 먼저 거명했다.
이어 주더(朱德), 펑더화이(彭德懷), 류보청(劉伯承), 천이(陳毅), 뤄룽환(羅榮桓), 쉬샹쳰(徐向前), 녜룽전(섭<손수변 없는 攝>榮진<至+秦>), 예젠잉(葉劍英) 등 10대 원수를 거명하면서 세번째 서열로 등재돼 있던 린뱌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린뱌오는 동북군구 사령관으로서 제2차 국공내전 막바지이던 1948년과 1949년 장제스(蔣介石)가 이끌던 국민당 정부 패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3대 전투' 가운데 랴오선(遼瀋)과 핑진(平津) 등 2대 전투에서 승리했던 장군이다.
린뱌오는 국무원 부총리 겸 국방부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특히 마오쩌둥이 1966년부터 본격화한 문화대혁명 시기에 린뱌오는 인민해방군을 이끌면서 마오쩌둥을 철저하게 보위해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마오쩌둥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반(反) 마오쩌둥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71년 9월 비행기를 타고 도주하다 몽골 상공에서 추락사했다.
린뱌오는 그후 공산주의를 배반한 인물로 비판받아왔으나, 2007년 인민해방군 군사박물관에 그의 초상화가 전시되며 사실상 명예를 회복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시 주석이 그를 10대 원수 호명에서 뺌으로써 린뱌오가 차후 어떤 대우를 받을 지 주목된다.
베이징 정계 내부 소식통들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시 주석 체제에서 당원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이 충성심이라고 본다면 시 주석이 린뱌오의 이름을 빼버린 것은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시 주석이 지난주 중앙과 지방정부의 장관급 간부 400여 명을 모아 놓고 당 노선을 어기거나 당의 방침에 저항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면서 "린뱌오는 당에 의해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힌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ys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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