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인권위도 너무 말랑말랑한 권고로 일관한 책임 있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사건 권고수용률이 99%에 육박하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해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군·각급 학교·시설·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진정사건 권고의 수용률이 98.6%를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
설립 직후인 2002년의 100%와 2015년의 99.4%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권고수용률이다.
사실 권고수용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66.1%를 기록한 것을 빼면 설립 이래 지금까지 내내 80%대 후반에서 100% 사이를 유지해왔다.
기관별 수용률도 검찰·군·지자체·각급 학교·다수인 보호시설 등 대부분 기관의 수용률이 100%였고, 청와대 인근 집회 일괄금지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에 불수용 의사를 밝혔던 경찰만 90.9%의 수용률을 보였다.
그러나 수용률이 높아 보이는 데는 기관들의 '꼼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먼저 한 사안에 대해 여러 가지 조치를 권고할 때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않는 '일부 수용'이 있다.
인권위는 전부 수용과 일부 수용을 모두 '수용'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권고 일부만 받아들여도 수용률은 전부를 받아들인 것과 똑같다.
더 심각한 것은 미회신이다. 인권위는 기관이 회신한 경우에만 수용률 통계에 반영하기 때문에 권고를 무시하고 모르쇠로 일관해도 오히려 수용률이 높아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실제로 작년 인권위가 한 권고는 모두 249건이지만, 인권위는 연말 기준 71건(28.5%)에 대해서만 수용 여부를 회신받았을 뿐 나머지 178건에는 답을 받지 못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소식지 '이슈와 논점'에서 "인권위는 최근 3년간 중앙 정부부처에 한 권고의 수용률을 87.2%로 잡고 있지만, 권고 70건 중 일부 수용·불수용·검토 중을 제외하고 전부 수용된 것은 36건으로 51%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권위법은 기관이 권고를 받으면 90일 이내에 수용 여부와 이행계획을 회신하도록 했지만, 벌칙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90일 이내 회신율은 2012년 78.5%에서 조금씩 낮아져 지난해에는 74.7%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권고수용률을 실효적으로 높이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을 빨리 구제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인데 권고수용 여부조차 회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역할을 다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직후인 5월 25일 인권위 위상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무늬만 수용' 행태나 수용 여부 미회신 등을 근절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수용되기 쉬운 권고를 주로 해온 것도 수용률 고공행진 '착시'에 일조했다고 입을 모았다.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인권위는 그간 '인권교육 시행' 등 기관이 수용하기 쉬운 말랑말랑한 권고를 해왔다"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은 '권고' 대신 이행계획 회신 의무가 없는 '의견표명'을 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오 국장도 "국회나 사법부 등 힘 있는 기관에는 거의 권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comm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