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인류학자 1971년 저작 국내 소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넓은 기관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밖에 있었던 피부(접촉)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이는 영국 태생의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1905~1999)였다.
몬터규는 1944년 갑상선 적출술을 받은 흰쥐 중에서 사람들로부터 평소 귀여움을 받았던 쥐들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위스타연구소의 논문 한 편을 우연히 접했다.
쥐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행위가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차이를 가져왔음에 흥미를 느낀 몬터규는 이후 수의사와 축산업자, 목장업자 틈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를 모은 책이 1971년 발간된 '터칭'(원제:Touching)이다.
글항아리 출판사를 통해 국내에 '지각' 소개된 이 책은 촉각 경험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발달과 인간관계, 문화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샅샅이 보여준다.
저자는 특히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피부 접촉을 중시한다.
모유 수유는 단순히 갓난아기의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 이상이다.
이때 일어나는 신체 접촉을 통해 아기와 어머니가 누리는 혜택은 막대하다.
가령 아이는 젖을 빨아 먹으면서 구강과 인두 구조 '훈련'을 자연히 경험한다.
성장 과정에서 피부 자극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로는 출생 직후 시각과 청력을 모두 상실했음에도 피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힌 헬렌 켈러가 있다.
만지고 핥고 쓰다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펼쳐놓은 저자는 점점 현대인의 삶이 '불가촉'하게 바뀌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책의 결론도 신생아 시기의 촉각 경험을 옛날처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신생아는 가능한 한 언제든 엄마 품에 놓아줘야 마땅하다. 신생아는 '아기방'으로 옮겨서도, 아기 침대에 두어서도 안 된다. (중략) 유모차 대신 아기는 중국의 포대기나 에스키모의 파카와 동등한 무언가에 싸여 엄마나 아빠 가슴에 안기거나 등에 업혀 다녀야 한다."
'20세기의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학자'(생태인류학자 레슬리 스폰셀)로 평가받는 저자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지식을 동원해 600쪽이 넘는 책을 수월히 풀어나간다.
나온 지 반세기 가까이 된 책이다 보니 접촉 결핍이 동성애의 원인이라는 지적 등 가려서 읽어야 할 부분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최로미 옮김. 620쪽. 2만8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