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새 마필관리사 2명 자살…부산경마장서 무슨 일이

입력 2017-08-03 11:06  

두달새 마필관리사 2명 자살…부산경마장서 무슨 일이

노조 "다단계 고용구조 개선, 마필관리사 직고용 해야"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지난 5월 말 렛츠런파크 부산경남(한국마사회 부산경마장)에서 마필관리사 1명이 목숨을 끊은 지 두 달여 만인 지난 1일 부산경마장 소속 마필관리사가 또 숨졌다.

두 사람의 죽음에 동료 마필관리사들은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한 죽음의 질주를 이제는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 '국내 1호' 타이틀 유명 마필 관리사의 죽음

지난 5월 27일 오전 1시 5분 부산 강서구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내 마방 앞에서 마필관리사 박경근(38)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X같은 마사회"

박씨의 소지품에서 나온 A4용지에는 죽음 직전 그가 느꼈던 분노가 짧지만 거친 욕설 한 줄로 남겨져 있었다.

박씨는 소위 '잘 나가는' 마필관리사였다.

박씨의 이름 앞에는 '국내 1호 말 마사지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대학시절 운동학을 전공하며 취득한 물리치료사 자격증과 스포츠 마사지사 자격증을 활용해 외국 경마장에만 있던 '말 마사지'라는 영역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척해 자신만의 분야로 키웠다.




누구보다 일을 열심히 했던 그에게도 마필관리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근무 환경은 다르지 않았다.

양정찬 마필관리사노조 부산지부장은 지난 5월 기자회견에서 "박씨가 (숨지기 전날) 관리하는 말이 경주하던 중 앞발을 드는 바람에 성적이 떨어지자 조교사가 박씨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의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교사는 마필관리사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장님'이다.

부산 경마장의 이런 고용구조는 수도권에 있는 과천 경마장과는 다른 점 중 하나다.

과천 경마장은 마필관리사 '협회'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고 있지만 부산 경마장은 개별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한다.

마필관리사 노조의 한 관계자는 "조교사의 갑질이 쉬운 구조로 마필관리사는 '파리 목숨'"이라면서 "조교사가 친척을 고용하려고 10년 넘게 일한 마필 관리사를 말 한마디로 쫓아내고 성과급을 규정보다 적게 주고 임금을 착취해도 항의도 못 한다"라고 설명했다.

마필관리사를 위한 노조는 있지만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

숨진 박씨는 지난 5년간 노조 대의원으로 일하며 처우 개선을 위한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좌절만 맛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노조비를 납부하는 노조원의 명단이 유출되면서 노조탈퇴 압박이 심했다"면서 "1년사이 노조원 250명 중 60명만 남았는데 조직적인 압박 없이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숨지기 열흘 전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에 노조 탄압 관련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은 전 의원이 당시 부재중이어서 전화 통화가 직접 이뤄지지는 않았다.




◇ 68일째 장례거부, 동료는 단식투쟁

박씨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박씨가 생전 주장한 마필관리사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 무기한 박씨의 장례를 연기하기로 했다.

장례식으로 '배수진'을 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유가족들은 박씨의 죽음이 너무 헛되게 될까 봐 눈물을 참고 동의했다.

그사이 동료들은 거리로 나섰다. 박씨가 안치된 병원 앞에서, 국회에서, 고용노동청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이어갔다.

동료 몇몇은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미필관리사 노조와 한국마사회는 6월 중순 제도개선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차는 컸다.

여러 가지 쟁점을 두고 밀고 당기기만 이어졌다.

그사이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부산경마장을 시찰하고 한국마사회 간부들을 면담하는 등 노조를 돕고자 했지만 입장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 마필관리사 또…

박씨의 장례가 치러지지 못하고 66일이 흐른 지난 1일 부산경마장 소속 마필관리사 이현준(36)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와 유가족은 이씨가 숨지기 전 "노예처럼 일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이씨가 지난 5∼6개월 동안 동료 1명이 병가를 냈을 때 인력 충원이 없어서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숨지기 전 장염을 앓았는데 말의 경주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말에 오를 때마다 구토하는 일이 반복됐지만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마필관리사 착취 문제를 해소하려면 현재의 고용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마필관리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사회 소속 직원이었다.

하지만 1990년 마사회가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며 '개별 마주제'를 부산경마장에 적용했다.

이 때문에 현재 개별 마주가 조교사를 고용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조는 "마사회, 마주, 조교사, 기수·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 때문에 피라미드 맨 아래에 있는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착취를 당한다"면서 "마사회가 과거와 같이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조교와 마필관리사가 소속된 마방은 그 자체로 프로 스포츠의 한 구단"이라면서 "한 구단 소속 임직원을 각각 다른 주체가 고용하면 구단간 경쟁 체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각종 경마 부정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또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를 직고용하면 마필관리사를 조교사에게 파견해야 하는데 파견법 대상이 아니라서 현행법 위반이 된다"면서 "마필관리사는 개인사업자 밑에 고용된 형태로 마사회의 간접고용으로도 볼 수 없어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과도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rea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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