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만 내리면 상판·교각 유실…문화재여서 인공적 조치 못 취해
진천군 "이번 피해복구 작업은 수위 낮아지고 흙탕물 가셔야 진행"
(진천=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방향으로 차를 몰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접어들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지네 모양의 돌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 초에 축조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전해지는 농다리다.
농다리는 편마암의 일종인 자줏빛 돌을 지네 모양으로 쌓아 만들었다. 길이만 무려 93.6m에 달한다. 폭은 3.6m, 높이는 1.2m다.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녀 1976년 충북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됐다.
주말과 휴일에는 농다리를 건너 초평호를 따라 조성된 초롱길을 걷는 관광객들이 많다.
진천군은 농다리를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 2000년부터 매년 5월께 '생거진천 농다리 축제'를 연다.
1천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농다리도 자연의 큰 힘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다.
진천지역이나 미호천 상류인 음성군 쪽에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급류에 휩쓸려 상판과 교각이 반복적으로 유실되는 것이다.
음성군 삼성면에서 발원한 미호천 물은 음성 대소면과 농다리를 거쳐 청주 쪽으로 흐른다. 농다리는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이나 큰 상처를 입었다.
문백면에 227㎜의 비가 쏟아진 지난달 16일에는 교각과 교각 사이를 의미하는 전체 28개 칸 가운데 22번 칸 상판 1개가 떠내려갔다.
전체 27개 교각 가운데 22·25·26번 교각 일부도 유실됐다.
이날의 피해는 그러나 예고편에 불과했다. 지난달 16일보다 훨씬 적은 양의 비가 이 지역에 내린 지난달 31일(63㎜) 오히려 피해가 더 컸다.
전체 28개 칸 중 19·21·22번 상판이 떠내려갔다.
교각도 유실됐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상판 3개가 한꺼번에 유실된 것은 2006년 7월 이후 11년 만의 일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이인석 진천군 학예연구사는 4일 "지난달 31일 미호천 상류인 음성 쪽에서 워낙 많은 물이 유입된 데다 생활 쓰레기와 부유물까지 떠내려와 피해가 컸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일 음성군 삼성면에 153㎜의 폭우가 쏟아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유실된 상판과 교각은 높은 돌탑이 무너진 것 같은 형태로 미호천 물에 잠겨 있다. 관광객들이 밟고 건너는 상판은 그나마 교각 근처에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교각 돌은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상판과 교각이 유실되자 군은 관광객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농다리를 응급복구하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미호천 수위가 낮아지고 흙탕물이 가셔야만 복구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흙탕물이 사라져야만 물속에 처박힌 교각 돌을 일일이 찾아내 크기와 모양을 모자이크하듯 맞춰서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교각과 상판을 맞물리게 쌓아야 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물살이 느려지고 흙탕물이 사라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응급복구를 한 뒤 설계를 거쳐 항구적인 복구에 나설"것이라고 말했다.
농다리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19차례나 장마 때마다 유실돼 거의 매년 복구공사가 이뤄졌다.
2009년 7월에도 피해를 본 바 있다. 문제는 피해를 줄일 방법이 현재로썬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문화재인 농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호천 형질을 바꾸면 환경훼손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축조 기록 등이 있다면 원형복원에 나설 수 있겠지만, 농다리는 자연 하천에 자연석을 쌓아 만든 것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그렇다고 농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인 조처를 한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손상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써는 자연석을 쌓은 형태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y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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