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31년간 재직…이달 말 정년퇴임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 만들어 개도국에 맞춤형 기술 보급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31년 동안 강의와 연구가 어깨를 짓눌렀는데 그 부담에서 벗어나니 시원한 느낌도 들죠. 한편으로는 '벌써 학교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섭섭하기도 해요."
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유영제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1986년 2학기부터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재직해온 유 교수는 효소 단백질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자연 상태에 있는 쓸모 있는 효소를 찾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능 좋은 효소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주된 연구 과제였다.
"바이오테크놀로지(BT)가 참 멋진 분야에요. 그동안 전자산업이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바이오산업이 새로운 산업화를 이끌 겁니다. 이제 한국의 바이오산업도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는데 연구를 접으려니 아쉽죠."
학문에 대한 열정이 큰 만큼 그의 얼굴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지금까지 300여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며 왕성한 연구활동을 해온 유 교수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첨단 과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 교수는 '나눔의 과학기술'을 실천하는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초 필리핀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한 유 교수는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에게 피부병 치료 연고를 발라주는 것을 보고 발병 원인에 주목했다.
원인은 식수에 있었다. 하수 처리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가축 분뇨가 뒤섞인 물을 식수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 교수는 필리핀에서 맞춤형 '적정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오염된 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첨단 정수기가 아니에요. 최첨단 기술은 아니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기술이 '적정기술'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동료들을 모아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를 만들어 휴대용 정수기, 태양광 패널 결합 정수기 등 적정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일에 앞장섰다.
아울러 유 교수는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맹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교육이나 환경 개선, 의료 기술 향상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며 "과학·농업·의료 전문가들이 다 함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상에서 유 교수가 최근 새롭게 시작한 모임이 서울대 사회공헌교수협의회다. 사회공헌교수협의회에는 각 전공분야에서 왕성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온 교수 50여 명이 동참해 협력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유 교수는 은퇴 후에도 이 모임의 명예 회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또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와 함께 창의력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유 교수는 "창의력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며 대학원의 교육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와 제자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교수들의 '갑질' 문제가 잇따라 불거진 데 대해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갑을'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학원 교육이라는 것이 교수 지시에 따라 반복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는 곳이 아니라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며 "교수와 제자가 인본주의적인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그는 서울대 교무부처장과 입학처장 그리고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지냈으며 '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가 산다'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은퇴 후 계획에 관해 묻자 유 교수는 "아직 계획은 없다"며 "한 1년쯤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 뭔가 '필'이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뭘 해도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였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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