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차 배우' 이호재 "누군간 연극을 지켜야할것 같아 버텼죠"

입력 2017-08-06 09:30   수정 2017-08-06 10:19

'55년차 배우' 이호재 "누군간 연극을 지켜야할것 같아 버텼죠"

원로연극인 조명하는 '늘푸른연극제'에서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 공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원로'라는 말은 후배들을 위해 해놓은 일도 있고 자기도 그만큼 보람있게 살았던 사람들을 대접해 주는 건데 나는 별로 한 일도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좋다고 (연극) 한 건데 원로 대접받으니 송구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연극사에 족적을 남긴 원로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늘푸른연극제'에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76)는 '원로'라는 표현에 어색해했다.

연극제 마지막 작품으로 1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에 출연하는 그를 지난 3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났다.

19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생쥐와 인간'의 레니 스몰 역을 통해 무대에 데뷔한 지 올해로 55년째다. 고교 때 아이스하키를 했던 그는 동랑 유치진이 설립한 한국연극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예술 쪽엔 전혀 재능이 없었어요. 연극을 할 생각도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놀았는데 갈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연극아카데미는 9월에 학기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친구랑 같이 원서를 냈는데 그 친구는 떨어지고 저만 붙었죠. 연극은 처음엔 재미를 잘 못 느꼈는데 옆에서들 재주가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연극하는 사람들이 대개 술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맨날 만나는 사람들과 어영부영 몰려다니다가 연극을 계속하게 됐죠. 원래는 학교도 잘 안 다녔는데 이론도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꼴찌에서 두 번째로 졸업하긴 했어요."






'어영부영'했다고는 했지만, 그는 선배와 동료들이 TV 드라마와 영화로 떠날 때도 연극판에 남았다.

"그때 같이 연극을 하던 동료들이랑 대학 선배들이 텔레비전으로 다 갔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연극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싶어서 남아있었던 거죠.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 가버리면 후배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TV로 가기 위해 연극을 거쳤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버틴 거죠. 사실 TV와 영화에 출연한 건 얼마 안 됐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극판에서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연기하는 그 순간, 관객과 바로 호흡할 수 있다는 연극만의 매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연극의 매력을 설명하던 순간, 무뚝뚝하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졌다.

"TV 드라마나 영화도 촬영 순간에는 모든 사람이 물론 최선을 다하죠. 그렇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를 보는 것은 드라마가 방영되거나 영화관에서 상영된 후에요. 하지만 연극은 공연하는 즉시 교감을 하죠. '호흡을 같이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긴장된 장면에서 배우가 숨을 안 쉬면 관객들도 따라서 숨을 멈춰요. 연극 아니면 그런 걸 느낄 수가 없어요. 그게 다 무대에서 보여요. 관객이 호흡을 같이하는 게, 함께 숨 쉬는 게 느껴지는데 그 기분은 연극을 안 해보면 몰라요."

그렇게 연극의 매력에 빠진 그는 지금까지 초·재연을 포함해 180편 가까운 연극에 출연했다.

"남자배우로서 해 볼 작품은 다 해봤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드라마센터에 있을 때는 1972년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를 오태석씨가 번안한 '쇠뚝이 놀이'가 있죠. 그거 할 때는 온 무대를 날다시피 다녔죠. 그다음 국립극단 시절에는 1976년 '페르귄트'가 괜찮았어요. 그 뒤로는 이만희 작가 작품들이 재미있었어요. 시대가 유쾌한 시대가 아니었는데 이만희씨 작품은 즐거웠어요.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보고 가면서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죠."






2000년대 이후 그의 작품 연보에는 '컬티즌'이라는 극단이 빠지지 않는다. 2000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 이만희 작가의 '불 좀 꺼주세요'가 인연이 돼 시작된 이호재의 팬클럽 '빨간 소주'에서 출발한 극단은 이제 그를 위한 극단이다.

'컬티즌' 이야기가 나오자 무심한 듯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달변가로 변했다.

"그 이야기는 좀 길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나 텔레비전, 연극 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돼요. 시대가 그러니까 당연한 거긴 하지만 나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설 무대가 없어요. 그렇다고 썩히기에는 좀 그러니 나이가 든 배우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정혜영 대표가 극단을 만든 거죠. 그러다 보니 작품을 선정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작품,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골라요. 이번에 하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도 칠순을 바라보는 초등학교 동기동창 3명의 이야기예요. 컬티즌 공연에는 중장년·노년의 관객들이 많아요. 옛날에 연극 보던 분들이 나이가 들고 다시 오시는 거죠."

'원로'가 된 배우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열심히들 잘하고 있다"면서 "자신과 색깔이 맞는 극단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자신과 컬러가 맞는 극단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기본을 다져 외부로 나가야 해요. 잘 맞지 않는 극단에 있으면 도태되기 쉬워요. 물론 그 극단을 찾기가 쉽지는 않죠. 연극판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이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관객들이 왔다가 가기도 하고 그렇게 유지되는 거에요. 나쁜 연극도 있어야죠. 그래야 그게 나쁜 건 줄 아니까. 다 제대로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27일까지 공연된다. 전석 3만원.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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