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시치헤이 '홍사익중장의 처형'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일본강점기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군 중장에 오른 홍사익(1887∼1946)은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으로 부임했던 그는 이후 전범재판에서 B급 전범으로 사형됐다.
홍사익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됐지만, 그의 행적을 놓고서는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
그는 일본육사 동기로 1919년 중위 때 일본군을 탈주해 만주로 망명했고 나중에 광복군 사령관이 된 지청천으로부터 수차례 광복군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부하고 일본군에 남았다. 최고위직인 자신이 배신하면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 병사들과 징용 노무자들이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광복군과 교류하며 지청천 등의 가족을 도왔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군에서도 항상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혔다. 전범재판 때에는 단 한마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일본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쓴 '홍사익 중장의 처형'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홍사익의 의식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파헤친 책이다.
홍사익 주변 인물들과 가족들 등을 직접 취재한 그는 홍사익이 일본군에 남아있었던 것은 천황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대한 충성'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며 그를 옹호한다.
"홍 중장은 스스로의 결단으로 일본 군인의 제복을 입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입었다는 결단은 천황이 사라지든 일본군이 괴멸되든 변함없이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 그 제복을 벗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스로의 결단에 대한 충성이란 구체적으로 그러한 태도일 것이다."(117쪽)
저자는 이어 방대한 전범재판 기록을 자세히 분석하고 그 결과 홍사익은 당시 필리핀 포로들에 대한 지휘권을 갖지 못했고 그의 '죄'는 '명목적 총책임자'로서 추상적인 책임에 불과한 만큼 무죄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 홍사익이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으로 갔던 것도 "자의로, 흔쾌히 갔던 것이 아니라 그곳이 죽을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갔던 것"이라며 '최후의 순간에 염치와 희생을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홍사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반론이 나와 있다.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이었던 언론인 송건호씨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사관논총' 28집에 실은 '홍사익중장의 평전'에서 이런 시각을 반박했다.
송건호는 홍사익에 대한 평가가 일본 강점기와 해방 후 시점에서 보는 판단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홍사익이 결국 철저한 친일파였다고 주장한다.
독립군으로 넘어갈 기회가 수차례 있었는데도 끝까지 일본군에 복무한 점에 대해 "철저한 친일파로서 구제할 수 없는 반민족적 인물이며 좋게 보아 기회주의자 이상의 구실을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런 행동이 일본군에 남은 다른 조선인들을 생각한 것이었다는 부분에서도 "일종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본군에 남은 것은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 민족의 광복보다는 기득권의 유지라는 숨은 동기가 작용한 때문"으로 추정한다.
책을 펴낸 페이퍼로드측은 "홍사익이 친일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다만 좁은 의미의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같은 이분법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이진명 옮김. 696쪽. 3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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