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국제 왼손잡이의 날'을 아시나요?

입력 2017-08-08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국제 왼손잡이의 날'을 아시나요?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1995년 남성 듀오 패닉이 발표한 노래 '왼손잡이' 가사의 일부다. 편견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심경을 은유한 노래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왼손잡이가 좌파를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왼손잡이는 오랜 세월 마이너리티로 억압받아왔지만 여성, 흑인,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에 비하면 조직화가 덜 이뤄졌고 권익 투쟁에 나선 역사도 짧다. 미국인 딘 캠벨은 왼손잡이들이 겪는 불편을 개선하고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자 1932년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했다. 협회는 1976년 캠벨의 생일인 8월 13일을 '국제 왼손잡이의 날'로 제정하고 1992년부터 해마다 공식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올해도 오른손잡이들에게 왼손잡이용 병따개나 가위 등을 쥐어주고 왼손잡이의 일상을 체험하게 하거나 왼손만 쓰는 게임을 펼치며 왼손잡이가 겪는 고충을 알리고 오른손 중심의 생활용품 개선을 촉구하는 이벤트를 펼친다.




왼손잡이 비율은 전 세계에서 10%가량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5% 정도가 왼손잡이고, 왼손 사용을 금기시하는 아랍권에서는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왼손잡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부모가 왼손잡이면 자녀가 왼손잡이로 태어날 확률이 높아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동일한 DNA를 지닌 일란성 쌍둥이가 각각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로 갈리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태어날 때 압박으로 뇌 한쪽이 미세하게 손상돼 스위치가 바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논리나 이성을 관장하는 좌뇌가 주도적이면 오른손잡이, 직관과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가 주도적이면 왼손잡이가 되므로 왼손잡이 가운데 천재나 예술가가 많다고 한다.



왼손잡이는 언어에서부터 차별당하고 있다. '오른'은 '옳다'란 말에서 나왔고 '바른'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왼'의 원형인 '외다'의 사전적 풀이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서 쓰기에 불편하다' '마음이 꼬여 있다'이다. 라틴어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sinister'는 '흉하다' '불운' 등과 동의어인 데 비해 오른손잡이를 일컫는 'dexter'는 '알맞다' '능숙하다'의 뜻이다. 영어에서도 'right'는 '옳다' '정당한' '정확한' '곧은' '적절한' '어울리는' '정상적인' '건강한' '참된' '정의' '권리' '인권' '소유권' 등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예우받는 사람' '특별히 신뢰를 받는 지위' ' 믿을 만한 사람' '심복' 등을 가리킬 때도 '오른팔'(right-handed)이라고 한다. 반면 'left'는 '무시된다'란 뜻을 암시한다. 야구나 권투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사우스포'(southpaw)의 '포'(paw)도 '손'을 비하하는 단어다. 아랍에서는 밥을 먹을 때는 오른손만 사용하고 왼손은 부정(不淨)하다고 여겨 화장실에서 쓰므로 악수할 때 왼손을 내미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일본에서도 아내가 왼손잡이면 합당한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집안의 자녀가 왼손잡이면 왼손을 묶어놓고 못 쓰게 하거나 회초리로 손을 때려가며 오른손잡이로 바꾸려고 했다. 자녀가 사회적 차별과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밥 먹는 이를 보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군"이라며 혀를 차는 모습은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릴 때 왼손잡이를 억지로 교정하려 하면 아이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말더듬이 같은 언어장애를 겪거나 읽기 능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서적 문제를 드러낼 우려가 크다고 한다.


예전보다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왼손잡이 처지에서는 주변에 불편한 것투성이다. 왼손잡이들은 밥 먹을 때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왼쪽 끝자리를 찾아 앉는다. 대학 강의실 의자는 모두 오른쪽에 책상이 붙어 있다. 컴퓨터용 마우스는 오른쪽에 놓여 있고, 전화기 수화기는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메모하라고 왼쪽에 달려 있다. 지하철 개찰구나 음료 자판기를 비롯해 냉장고 문, 카메라 셔터, 가위, 칼, 자, 전자계산기, 깡통따개, 나사 등도 모두 오른손잡이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소총도 탄피가 오른쪽으로 튀어나오고 노리쇠전진기도 오른쪽에 달려 있어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기에 불편하다. 수능시험 답안지 OMR 카드를 왼손으로 작성하면 잉크가 손에 묻어 카드에 번진다. 바이올린 등도 왼손잡이용이 드물 뿐 아니라 왼손으로 활을 켜면 옆 연주자를 방해한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상 트랙이나 야구 베이스도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다. 폴로나 필드하키는 오른손(오른쪽)으로만 스틱을 휘두르도록 규정돼 있다. 골프에서도 왼손잡이는 클럽이 비싸고 연습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다만 권투·유도 등 격투기나 테니스·탁구 등 일부 종목의 경우 왼손잡이는 주로 오른손잡이를 상대하지만 오른손잡이는 가끔 왼손잡이와 대결하므로 왼손잡이가 유리하다. 축구나 배구 등에서도 왼손잡이는 희소성이 있어 쓰임새가 많다. 야구에서는 왼손 투수와 타자가 유리해 왼손잡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나 포수,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는 송구하기가 불편해 왼손잡이가 맡지 않는 게 관행이다.



지난해 미국 육군은 왼손잡이 병사도 손쉽게 안전핀을 빼서 던질 수 있는 수류탄을 개발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왼손잡이 숫자를 파악해 책걸상 등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교사들도 왼손잡이 학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별도의 상담지도를 한다고 한다. 닌텐도가 휴대용 게임기 컨트롤러 왼쪽에도 방향키를 장착한 제품을 내놓은 것을 비롯해 각국에서는 왼손잡이용품 개발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정몽준 의원이 왼손잡이를 위한 편의시설을 생산·설치하는 기업에 조세 감면 혜택을 주는 일명 '왼손잡이 지원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그 뒤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존중받는 세상이 문명사회다. 국제 왼손잡이의 날을 맞아 왼손잡이들이 겪는 불편을 한 번쯤 생각해보고 나아가 이주민, 장애인 등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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