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세계 경제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식 시장에서도 미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하는 '가치 투자'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이하 현지시간) 진단했다.
가치 투자란 수익률에 비해 가치가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것으로, 장기적 투자를 선호하는 펀드매니저 사이에서 각광 받았다. 특히 대공황부터 IT 호황기를 지나 금융 위기에 이르기까지 가치 투자를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이란 예언이 반복됐지만 매번 가치 투자의 승리로 끝났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시작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을 거치며 주식 시장의 자금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치 투자의 인기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애널리스트인 켈먼 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러한 저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투자자들이 성장률을 좇게 마련"이라며 "이럴 때 가치 투자는 외면받게 된다"고 말했다.
가치 투자가 사그라지는 대신 눈앞의 수익성을 보고 투자하는 '성장 투자'가 뜨고 있다.
아마존, 넷플릭스, 테슬라처럼 빠르게 이익을 실현할 수 있고, 주가 성장률도 높은 주식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유행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유럽 가치주 지수가 올해 상반기 3% 오르는 데 그친 반면 MSCI 유럽 성장주 지수는 9% 뛰어올랐다.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MSCI 아시아 가치주 지수의 수익률이 성장주 지수에 비해 10%포인트 밑돌았다.
미국에서도 러셀 1000 성장주 지수의 상승률이 가치주 지수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웃돌면서 2009년 이후 최대로 격차를 벌렸다.
자금 이탈도 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주 가치 펀드에서는 지난 10여년간 1천160억 달러가 빠져나갔는데, 이 중 4분의 1 이상이 불과 최근 1년 사이에 이탈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로 보면 성장주 펀드의 수익률 중간치는 가치주 펀드에 비해 7%포인트 앞서고 있어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우위를 점했다.
가치 투자는 부침을 거듭했지만 이번에는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치 투자자 중 한 명인 제러미 그랜섬은 최근 분기 보고서에서 "이번에는 상황이 매우 달라 보인다"고 진단하고, 주식 가치가 예전 주기보다 훨씬 오랫동안 고평가된 상태로 머물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가치 투자 매니저로서 이러한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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