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 신상목씨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펴내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오늘의 일본을 만든 출발점으로 흔히들 1867년 메이지(明治) 유신을 꼽는다.
봉건적 정치 체제와 결별한 일본이 서구 기술과 제도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신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뿌리와이파리 펴냄)는 이러한 생각에 분명히 선을 긋는다.
책은 우리로부터 고래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인 '후진국' 일본이 100여 년 전의 서구화 개혁을 통해 강대국이 됐다는 인식이 사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지적한다.
일본 근대화 성공은 메이지유신 한참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국가적 역량이 서구 문명을 만나면서 '포텐이 터진' 결과라는 주장이다.
책은 메이지유신 이전의 260여 년을 이르는 에도시대를 주목한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시작된 1603년부터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준 1867년 전까지다.
"무사가 칼 차고 다니며 공포정치를 펴고 인민들은 그들의 눈치나 보며 벌벌 떨며 살았다고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에도시대에 일본은 조선을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저자는 16년간의 직업외교관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정통 일본 우동집을 5년째 운영 중인 신상목(47) 씨다. 그는 일본 문제를 다루는 외교부 본부 동북아1과와 주일대사관 등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책은 "서구 르네상스에 버금가는 전환의 시대"를 맞은 에도 일본의 변화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문화사적 접근을 취한다.
지방 영주 격인 다이묘들이 에도와 관할지를 오가며 생활하게 한 참근교대제가 에도의 도시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부터 소개된다.
수십만 명의 다이묘와 수행원들을 위한 소비시장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분양의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사람들이 점차 에도로 몰려들었고 서민들이 사는 풍경도 달라졌다.
이밖에 건국신화 상징인 이세 신궁 참배 유행에서 출발한 여행붐, 성을 주제로 한 오락소설 '호색일대남'의 인기에 힘입은 대중출판물 시장의 형성, 유통망 발달에 힘입어 일상식이 된 센다이미소(일본 된장) 인기 등이 촘촘하게 다뤄진다.
책은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자본, 시장, 경쟁, 이동, 통합, 자치, 공공 등 근대성의 요소가 어떻게 수용되고 사회를 바꿔놓았는지를 분석하면서 근대화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지고 싹을 틔웠는지를 쫓아간다.
저자는 마지막 글에서 19세기 구미 국가들로부터 불평등한 관계를 강요받았던 일본이 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법제 연구 등을 통해 불평등조항 폐기를 끌어냈다고 언급한다.
"스스로 강요당한 불평등을 조선에 다시 강요한 일본을 부도덕하고 악한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주권을 회복했고 조선은 회복하지 못했다. 그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없는가?"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역사관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
276쪽. 1만5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