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으로 읽는 중국문화 100년' 번역돼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추억의 영화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1987)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강한 잔상을 남기는 인물이 청 말기 실권자였던 서태후(1835~1908)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한 의상과 기이할 정도로 긴 손톱 때문이다.
서태후는 서양인들의 기교와 잔재주에 심취해 사진 찍기를 즐겼다. 그 덕분에 서태후뿐 아니라 황궁 내 여성들이 치장한 모습이 지금까지 생생히 전해진다.
1900년 여름, 서태후가 베이징으로 밀려든 외국군을 피해 자금성을 빠져 나와 도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을 겹겹이 감쌌던 옷들은 버려둔 채, 시골뜨기 한족 아낙네 차림새를 하고서였다.
"황제와 태후의 이 평민 복장이야말로 제국의 기운이 다 탕진해가는 상서롭지 못한 징조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국내에 번역돼 출간된 신간 '옷으로 읽는 중국문화 100년'(도서출판 선 펴냄)첫 장을 여는 이야기다.
베이징복장학원 교수인 위안저(68)·후웨(60)가 함께 쓴 책은 서태후 시대의 청 말기부터 지난 100년간의 중국 의복과 유행의 변천사를 다룬다.
청 말엽부터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복색만큼은 오랫동안 옛것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책은 '머리'(남성의 변발)부터 '발끝'(여성의 전족)까지 옛 풍습을 폐지하려고 했던 혁명가들과 이를 거부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한 문헌을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한다.
현대인 시선으로 보면 천하에 몹쓸 풍습으로 생각되는 전족조차도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는 점은 놀랍다. "새로운 정권 건설자들은 봉건주의 변발을 자르는 것이 황제를 쫓아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됐다."
당시 풍경을 지켜보면 '색계' 원작을 쓴 중국의 유명 작가 장아이링(1920~1995)의 글만큼 정확한 지적도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신구 교체의 혼돈 연대에는 정국이든 복장이든 별로 다르지 않았다."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2000)에서 우리를 매혹시켰던 치파오에 얽힌 민족과 여권 이야기도 흥미롭다.
1920년대 청말 만족의 옷과 유사한 치파오를 한족 여성들이 과감히 입으면서 반청 인사들을 아연하게 했다. 두루마기를 입는 남성들에 맞서 여성들이 널찍한 품의 치파오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많다.
항일전쟁의 역사를 뒤로 한 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중국 복식문화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친다.
양복과 치파오는 '낡은 사회' '비프롤레타리아' 낙인이 찍혔다. 마오쩌둥(1893~1976)의 소박한 중산복은 이후 수십년간 중국 전역에 광범위하면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수십년간 단조로운 군복 안에 억눌려 있던 '패션' 욕망은 1983년 천·솜 공급 개방과 사회 전반의 개혁·개방 흐름을 타고 분출한다.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입고 걸치는 옷이 정치·사회 변화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면서 지난 100년간 중국 옷의 변천이 곧 중국 현대사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모두 어떻게 수집했을지 궁금할 정도로 다양한 도판을 수록한 것도 장점이다.
사진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김승일·정한아 옮김. 548쪽. 3만2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