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10개 건설사 무더기 기소…최저가낙찰제 담합 역대 최대 규모
입찰 순번 제비뽑기로 정하고 합의유지 각서…신규업체 나오면 포섭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7년여 동안 대형 국책사업인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건설공사에서 3조5천억원대 입찰을 담합해 일감을 나눠먹은 건설사 10곳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이준식 부장검사)는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3조5천495억원 상당의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공정거래법·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10개 건설사와 소속 임직원 2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LNG 저장탱크는 시공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해 입찰 참가 요건으로 시공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입찰할 수 있는 건설사가 소수로 제한된다.
건설사들은 이를 악용해 모든 업체가 경쟁하는 대신에 담합해 나눠 수주하는 길을 택했다.
이들은 세 차례의 합의 과정을 통해 제비뽑기로 12건의 입찰을 수주받을 순번을 정했다.
공사가 발주되지 않아 물량을 수주하지 못한 업체에는 다음 합의 때 금액이 큰 공사를 수주하도록 해 물량을 고루 배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발주처가 참가자격을 완화해 새로 자격을 얻은 업체가 생기면 이 업체도 담합에 끌어들여 '평화'를 유지했다.
신규업체들이 낙찰 뒷순위이다 보니 '들러리만 서다가 배신당해 낙찰은 못 받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시하자 기존 업체들은 "마지막 입찰 때까지 합의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주며 그들만의 리그를 지켰다.
모든 경쟁자가 참여한 담합에 가스공사가 내건 '최저가 낙찰방식'은 무력화됐다.
수주를 받기로 한 회사를 위해 다른 회사가 들러리를 서 주는 방식이 활용됐다.
낙찰 예정사가 예정된 가격보다 조금 높은 가격의 입찰 내역서를 만들어주면 들러리사가 그대로 제출했고, 들러리사가 약속대로 응찰한 사실을 확인한 낙찰 예정사는 마지막에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따냈다.
그 결과 담합 이전인 1999∼2004년 건설사들의 낙찰률은 69∼78% 수준이었으나, 담합이 이뤄진 2005∼2013년에는 78∼96%로 크게 높아져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런 대대적·조직적 짬짜미는 역대 최저가 낙찰제에서 발생한 사건 중 최대 규모 담합으로 귀결됐다.
종전에 2009년 한국도시철도공단이 발주한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에서 3조5천980억원 규모의 담합이 적발된 바 있으나 이는 최저가낙찰제와 턴키 방식 등이 합쳐진 형태였다.
이번 13개 담합 업체에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도 3천516억원으로 호남고속철도 공사의 4천355억원에 이어 역대 2위다.
공정위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리니언시(자진신고 면제)로 고발에서 제외된 2곳과 법인 합병으로 공소권이 없어진 1곳을 제외한 10개 건설사를 기소했다.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대림산업, 한양, 대우건설, GS건설, 현대건설, 경남기업, 한화건설, 삼부토건, 동아건설, SK건설 등 국내 대표적인 건설사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해당 건설사의 임직원 20명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은 "담합범죄에서 개인 처벌이 따르지 않아 임직원의 심리적 부담감이 크지 않고, 오히려 회사에 이득을 얻게 한 공로로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는 등 경제적인 이익을 누려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기소된 임직원들이 4대강, 호남고속철 공사 담합 등에 관여했음에도 계속 공로를 인정받아 대표이사까지 승진하는 등 계속 담합의 주도자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회사는 임직원이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퇴직 후 벌금을 보전해주는 등 담합을 종용하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검찰은 4대강 입찰 수사 이후 대형 건설사들의 자정 결의가 있었고, 이번 사건은 결의 이전에 저질러진 범행으로 호남고속철 담합 등과 분리 기소돼 처벌받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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