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월드컵 유치하고 DJ가 성공 개최…용광로 정신 살려야
"대한민국 우수함 알리는 데 정치권도 할 수 있는 모든 것 해야"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나면 한국은 4대 스포츠 이벤트인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치러내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19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잘 치러낼 수 있었던 데는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온 국민의 단합된 힘이 있었다.
이런 단합에는 빈틈없는 예산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대회를 뒷받침해야 하는 정치권의 노력도 빠질 수 없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스포츠·문화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널리 알린다는 공통된 목표 앞에서는 여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유치와 개최 사이에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7년까지 시차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 단임제를 유지하는 한국에서는 전·현 정권 간의 유기적 협조도 필요했다.
특히 서울올림픽을 제외하면 보수 성향 정권과 진보 성향 정권이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유치와 개최를 분담해야 했음에도 서로의 이해를 앞세우는 정쟁이 발목을 잡는 경우는 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그 대표적 사례다.
1996년 한일월드컵 공동 유치는 김영삼(YS) 정권이 이뤄낸 쾌거 중 하나였다.
사실상 일본의 단독 개최를 바랐던 주앙 아벨란제 당시 FIFA 회장의 암묵적 지지를 등에 업고 일찍이 월드컵을 준비했던 일본과의 유치 대결은 패색이 짙은 듯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간 월드컵에서의 선전 등을 바탕으로 뒷심을 발휘해 공동개최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후발주자이다 보니 경기장 건설 등 모든 인프라 구축이 일본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97년 말에 터진 'IMF 한파'는 대회 준비에 찬물을 끼얹는 듯했다.
이에 같은 해 대선에서 승리한 당시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인은 정권 출범 전인 인수위 시절부터 월드컵조직위원회와 경기장 문제 등을 논의하게 하는 등 각별히 월드컵 추진 상황을 챙겼다.
김 전 대통령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게 하고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 건립도 확정하며 전폭적인 지원에 힘썼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YS 정권의 성과인 월드컵 유치라는 '바통'은 DJ 정권의 노력으로 연결돼 성적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한 대회라는 성과를 낳았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독일의 4강전에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은 전·현 정부의 합작으로 일궈낸 월드컵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는 노무현 정권이 유치하고 이명박 정권이 성공적으로 개최한 합작품이었다.
2007년 유치 경쟁이 벌어졌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구를 찾아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말하고 청와대 정책실을 통해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간 영상에 직접 출연해 '파이팅'을 외치는 등 마지막까지 노력했고 야당 소속이었던 김범일 대구시장 역시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해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인은 2008년 1월 인수위 시절 대회 준비상황 점검차 방한한 국제육상경기연맹 실사단 일행을 만나서 "좋은 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끝까지 도와달라"고 직접 당부하기도 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침과 동시에 이 전 대통령은 스포츠 분야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이 전 대통령은 아예 개최지 투표가 진행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가서 국가원수로는 이례적으로 영어 연설에 나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1차 투표에서 개최지를 확정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내년에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몫이 됐다.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TF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댓글조작 사건'을 조사하는 등 진보-보수 진영 간 불편한 관계가 불거지고 있지만 모든 걸 떠나 문 대통령에게는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게 지상과제다.
반년 앞으로 올림픽이 다가왔는데도 흥행이 저조한 상황을 비롯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동계스포츠가 희생양이 되면서 빚어진 차질도 극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며 평창동계올림픽 '붐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평창에서 열린 올림픽 준비 행사에 참석해 "국정농단 사건이 평창올림픽 준비 과정을 오염시켰다"면서도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치르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반드시 성공시킬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수와 진보, 여야, 전·현 정권의 경계를 넘어 국익 앞에 정쟁을 멈추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2002년 월드컵 준비를 이끌었던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으로 대변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며 "여기에 여야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대한민국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 국민의 질서와 의식 수준을 높이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의 성공을 위해 정치권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kj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