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연합뉴스) 우만권 통신원 = 케냐 서부 키수무에서 경찰과 시위자들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딕슨 오티에노는 "아, 또 시작인가"라며 한숨을 지었다.
대선을 치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키수무에서는 10년 전 발생한 폭력사태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AFP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오티에노는 거리에서 타이어를 불태우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자들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우려했다.
많은 수의 경찰이 군데군데 배치된 가운데 정치인들은 평온을 주문하고 있지만, 야당연합 대선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가 이날 정체불명의 해커들이 선거관리위원회(IEBC)가 운용하는 전산장비에 침투해 득표수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딩가 지지자를 중심으로 소요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날 오후 1천460만 표가 개표된 상황에서 오딩가는 44.8%를 얻어 54.7%를 득표한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에게 140만 표차로 밀리고 있다.
빅토리아 호수를 낀 키수무는 오딩가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나와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스티븐 오케다(37)는 "무언가 조작되고 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케냐타가 선거를 훔쳤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분개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키수무의 빈곤지역인 콘델레 지역에서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고 수도 나이로비의 일부 지역에서도 흥분한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지난 2007년에도 이들 지역에서 개표부정 시비로 끔찍한 유혈사태가 발생해 두 달간 전국적으로 1천 100명 이상이 숨지고 60여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이날 지지자들은 "라일라가 아니면 평화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키수무에서 헬기가 하늘을 선회하는 가운데 경찰이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경찰에 쫓기던 한 시위자는 "오딩가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라고 외쳤다.
이날 오후 시위 현장에는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고무탄을 발사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폭력사태는 나이로비의 빈민가인 마타레에서 더욱 과격한 양상을 띤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2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전한 가운데 머리에 총상을 입은 한 청년이 좁은 골목에 버려진 모습이 목격돼 충격을 안겨줬다.
청년의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감싸 쥐고 오열하는 가운데 시위대는 경찰에게 "당신들도 케냐인인데 왜 이런 짓을 하느냐"라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 2007년 발생한 유혈사태는 종족분쟁의 양상을 띠면서 케냐 국민의 정서에 치명타를 입혔다.
목격자들은 이날 마타레 지역에서 케냐타 대통령이 속한 키쿠유족 청년이 오딩가 후보가 속한 루오족 청년들에게 공격당하는 일이 발생해 종족분쟁의 악몽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모든 폭력은 오티에노에게 의미 없는 일로 비친다.
오티에노는 오딩가가 이번에도 표를 도둑맞았다고 믿지만 그 대가를 국민이 치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케냐타와 오딩가의 문제다. 우리가 피해를 볼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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