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문화관서 23일부터…"영화의 감동과 장면들 확인할 수 있어"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생때같은 자식의 시신이 담긴 관 옆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여인.
가족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뚜껑 없는 관 속에서 참혹하게 훼손된 모습을 드러낸 시신.
불안함과 두려움이 서려 있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광장의 사람들.
한산한 고속도로와 광주 26㎞, 장성 10㎞를 앞둔 지점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무장 군인.
트럭 짐칸에 올라 주먹을 말아쥐고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는 학생과 시민.
영화 '택시운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전시회로 찾아온다.
광주 5·18 기념문화관에서 이달 23일 열리는 전시는 '택시운전사' 속 독일 기자의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항쟁을 기록한 영상과 갈무리한 사진 약 100점을 선보인다.
5·18 참상을 현장에서 취재해 가장 먼저 세계에 알린 힌츠페터는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린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산하 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던 그는 5월 19일 한국에 도착해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오전 일찍 '김사복'씨가 모는 택시에 올라 광주로 향했다.
계엄군이 자행한 학살과 시민의 투쟁을 이틀 동안 기록한 힌츠페터는 신군부 단속을 피해 필름을 고급 과자 통에 숨기고 비행기 일등석을 이용해 일본까지 직접 배달했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ARD 뉴스와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4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5·18 진실을 세계에 전했다.
23일 다시 광주로 돌아온 힌츠페터는 항쟁 상황을 보도한 해외신문을 챙겨올 만큼 고립된 광주에서 외롭게 항쟁하는 시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마주했던 도시와 사람들, 영화보다 극적인 취재기는 1997년 출간된 '5·18 특파원리포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각색한 '택시운전사'를 통해 은막으로 옮겨졌다.
힌츠페터는 취재기에서 "나는 이 사건이 평화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싸웠던 작은 도시 광주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인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5·18, 위대한 유산/연대'라는 주제로 다음 달 14일까지 이어진다.
영상과 사진 등 기록물은 힌츠페터가 2005년 광주를 방문했을 때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말과 함께 5·18기념재단에 전했던 자료 일부다.
이번 전시에는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과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힌츠페터와 함께 5·18 당시 목숨 걸고 기록한 보도사진 100여점도 나온다.
저항 의지 없이 고개 떨군 시민의 머리로 곤봉을 내리치는 계엄군 등 혹독한 감시와 검열을 뚫고 취재했던 역사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5·18재단 관계자는 "실제로 존재했던 영화의 장면들과 감동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있었기에 광주는 외롭지 않았고 줄기찬 왜곡 시도에도 5·18 진실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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