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편견에 그간 마음껏 노래 못 불러"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에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10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9) 할머니의 구수한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애창곡 중 하나라는 '한 많은 대동강'을 구성지게 부른 길 할머니는 "집에서 혼자 있으면 괜히 내가 좋아하니까 남이 듣기 싫건 말건 나 혼자 노래하는 게 직업"이라며 웃었다.
길 할머니는 지난해 9월부터 애창곡 15곡을 직접 부른 앨범 '길원옥의 평화'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휴매니지먼트 등과 함께 제작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할머니가 사실 처음엔 노래 실력을 숨기셨다"며 "한국사회가 개인, 특히 여성으로서 아픈 과거를 가진 개인이 노래를 잘하거나 춤사위가 예쁜 것에 대해 편견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가 노래하시고는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고 한다"며 "2002년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시고 캠프를 갔는데 피해자들만 있는 그 자리에서도 길 할머니는 찬송가를 부르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한국사회가 할머니에게 노래를 막아왔다는 것을 몰랐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보통 여성처럼 노래 부르고 춤을 춰도 거리낌 없었을 '사람 길원옥'이 살았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강조했다.
제작을 맡은 휴매니지먼트 장상욱 대표는 "사람에겐 누구나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때 행복해지는 것 같다"며 "할머니 꿈이 가수였으니 그 꿈을 이룸으로써 할머니가 행복해지시고 나아가서는 저희가 행복해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음악감독 유민석 씨는 "처음에는 할머니의 육성 기록물을 만든다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첫 녹음 이후 욕심이 생겨서 할머니의 손자 손녀 같은 친구들이 옆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느낌으로 코러스도 넣는 등의 작업을 더 했다"고 밝혔다.
일반 시민 중 자원해 코러스로 참가한 이들은 "할머니가 꿈을 이루는 자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지원했다"며 "길원옥 할머니와 모든 할머니가 더욱 행복해지시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길 할머니는 자주 부르는 노래를 꼽아달라는 말에 '남원의 봄 사건'이라는 노래의 "남원골에 바람났네 춘향이가 신발 벗어 손에 들고 버선발로 걸어오네 쥐도 새도 모르듯이 살짝살짝 걸어오네" 대목을 즉석에서 부르기도 했다.
길 할머니는 "90살 먹은 늙은이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어떨 때는 좀 나이 먹어서 주책 떠는 것 아닌가 싶다"면서도 "그저 심심하면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오는 14일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서울 청계광장 무대에 올라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할 예정이다.
음반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정식 판매되지는 않는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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