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옵션·對中압박·추가제재·대화론 등 관측 무성
매티스 장관 "외교접근 선호", 트럼프도 "협상은 항상 고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북한에 '말폭탄'에 가까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과연 그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가졌는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이 주고받는 '말의 전쟁'이 결국 어떤 시나리오로 흘러가느냐가 한반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군사충돌도 염두에 뒀나…현재로선 '가능성 희박'
가장 염려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이틀 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과 관련, "아마도 그 성명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괌 포위사격'을 경고한 북한에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긴장감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괌에 대한 공격 움직임을 보일 경우에 대해서도 "가능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일들이 북한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할 구체적 날짜까지 지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 슈칸겐다이(週刊現代)는 10일 자체 입수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난달 31일 전화 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오는 9월 9일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화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아베 총리와 57분간에 걸쳐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내 책상에는 경제제재, 직접 협상, 군사공격, 정권 전복 등의 옵션이 있었고, 이 중에서 경제제재를 중심으로 중국에 영향력 행사를 요구했다"며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중국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내가 직접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에 시리아를 때렸던 것처럼 북한에 한방 때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고,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스케줄이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놈들의 건국기념일이 9월 9일 아니냐. 간부들이 모여서 기념식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최소한 현재로써는'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은 아직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관측했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엘리 래트너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우리가 핵전쟁 직전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래트너는 그 근거로 "대통령의 발언이 백악관 내부에서 선제공격을 추구하는 정책적 결정이 실제로 내려졌음을 시사한다는 징후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 조 버뮤데즈는 김정은이 수확기를 앞둔 현시점에서 농장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김정은이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국민을 동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경우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타격 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제거하는 선제적 '참수 공격'에 나서거나, '레짐체인지'(정권교체)로 이어질 대중폭동을 유도하는 방안 등이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처럼 1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갖춘 국가와의 무력 충돌은 어떤 식으로든 엄청난 피해를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 통신은 지적했다.
당장 북한의 포격과 미사일의 사정권에 놓인 서울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큰 충격파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도 트럼프 대통령의 '5대 시나리오' 중 맨 마지막으로 선제 군사공격을 언급하면서 "최후의 수단이자 가장 가혹한 대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싱크탱크인 국가이익센터(CFTNI)의 해리 카자니스 국방연구국장은 이 매체에 "김정은이 6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미국의 선제공격에서 이 가운데 한 두 개라도 놓친다면 서울, 도쿄, 또는 로스앤젤레스가 공격당할 수 있다. 아무도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한반도담당 선임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 중인 어떤 선제 타격도 위험하고 도발적이며, 한반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클링너 연구원은 1994년 핵위기와 비교할 때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다"며 "당시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대통령이 있고 북한 지도자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북한은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된 핵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췄다"고 우려했다.
◇ 숨은 속셈은 중국 압박…대북 추가제재 여지도 충분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 속에 숨은 진짜 의도는 북한의 '생명줄'인 중국을 더 압박해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고 원유와 식량의 주요 공급자인 중국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기 어렵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화염과 분노' 발언이 충분치 않았다고 경고하면서도 중국에 대해 "북한 문제에 있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행동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중국의 비협조에 실망감을 표현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은 중국이 대북 원유 차단 등의 강한 행동에 나서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카자니스 국장은 '더힐'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해 '중국이 북한과 관련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클링너 연구원도 "미국은 이란 돈세탁 문제로 유럽 은행들에 12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는데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에는 1페니도 부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중국 측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개인을 제재하는 것)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북한 자체에 대한 더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는 나라'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가 다른 나라에 했던 일을 북한에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결국은 대화 불가피"…미·북 협상 가능할까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는 등 선제타격으로 완전히 제압하기 어려운 억지력을 갖춘 만큼 결국은 대화와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북한을 향해 '정권 종말'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1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외교가 주도하고 있다"며 '톤다운'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과의 협상은 항상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연구센터 연구원은 AFP통신에 "외교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사용할 여지가 없다"며 "북한을 공격하거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킬 기회는 이미 닫혔다"고 말했다.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의 5대 시나리오 중 첫 번째로 '협상 테이블 복귀'를 꼽으면서도 최근 상황으로 볼 때 아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위해 제안할 만한 게 없다"고 했고, 카자니스 국장은 "북한이 미국인 3명을 인질로 잡고 있고 핵무기를 포기할 의도가 없는 이상 대화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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