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독립투사 증손 이동빈 경위, 남해 지키는 해경 됐다

입력 2017-08-13 07:00  

[사람들] 독립투사 증손 이동빈 경위, 남해 지키는 해경 됐다

남해해양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발령…"우리가 먼저 다가가면 한중 관계 개선될 것"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조국을 위해 힘써달라는 외할아버지 당부와 이방인으로 느껴야 했던 설움 때문에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경찰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죠.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한 적 없습니다."






경남 창원해양경찰서에서 현장직무교육 중인 이동빈(36) 경위는 독립투사의 증손자다.

그의 외증조부 이기일 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40년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해림현에서 숨졌다.

이후 이 경위의 가족은 헤이룽장성 영안시에 정착했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경위는 톈진 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꼭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은 이 경위는 대학 졸업 뒤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왔다.

"외국에 있으면 조국의 존재가 절박하고 크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이국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설움이 있습니다. 하루는 외할아버지가 중국인들과 싸워 다쳤는데 병원에서 중국 사람들만 받아준 적도 있죠. 그런 경험 때문인지 외할아버지는 기회만 되면 저보고 한국을 위해 일하라고 강조하셨죠."

2007년 무작정 제주도로 건너오기는 했으나 한국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중국에서 넘어왔다며 차갑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경위는 이에 굴하지 않고 목수, 농사, 일용직 노동 등을 전전했다.

2009년 귀화에 성공한 그는 본격적으로 경찰 시험을 준비했다.

경찰이 되면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적성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게다가 중국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경찰이 되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이 경위의 삶은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 출퇴근길이나 화장실에 갈 때도 짬을 내 책을 펼쳤다.

일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으나 이를 악물었다.

그 결과 2011년 외국어 특채로 순경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뒀다.






순경으로 합격한 뒤 제주자치경찰단 경찰기마대에서 2014년까지 근무했다.

2012년엔 월간문학지 '모던포엠'에서 시 부문 신인작품상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제가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해 더 다양한 역할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2013년부터 간부후보생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자치경찰단에는 외사국이 없어 제 언어능력을 제대로 쓸 기회도 적었고요."

2016년 시험에 합격해 간부후보생 65기로 새내기 경찰 간부가 된 그는 올 7월 해경으로 전출해 부산에 있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로 발령받았다.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해양경찰청이 부활하자 망설임 없이 해경에 지원했다.

중국어선 단속 등 외국어를 활용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물론 2011년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 중 순직한 이청호 경사의 기사를 접한 뒤 해경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기마대에서 근무할 때에도 중국인 관광객이나 유학생을 상대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중국에 혐한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졌다지만 우리 입장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서고 공감을 끌어내면 냉랭한 양국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해경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그의 꿈은 한중 관계에 박학한 국제범죄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국제범죄수사대에 몸담은 만큼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고 싶지만 동시에 한중 양국의 외교관계에도 전문적 지식을 쌓고 싶습니다. 동시에 해경은 언제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맞닥뜨릴지 모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자기 몸을 던져 헌신할 수 있는 각오도 매일 다져나가겠습니다."

home12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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