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1억∼2억원 낮춘 '급급매' 일부 거래…매수자 "더 떨어질 것" 관망
대책 전 계약 아파트 해지 속출…강남 재건축은 "팔고 싶어도 못팔아" 불만
분당 등 신도시 일부 호가 상승, 매수세는 없어…풍선효과 "글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연정 기자 = 8·2 부동산대책 발표 후 열흘이 지나면서 서울 아파트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매수세는 종적을 감췄고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나와도 잘 팔리지 않는다. 거래가 가능한 재건축 단지에는 시세보다 1억∼2억원 낮춘 다주택자들의 '급급매'가 한두개씩 팔리고 있지만 매수자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 전 매물을 쏟아낼 것으로 보이지만 매물을 받아줄 매수자들도 대출 규제와 거주의무 요건 등으로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거래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재건축·재개발 "급매물 나와도 안 팔려"…계약 포기도 속출
서울 아파트 시장이 급랭하고 있다. 당장 매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천만원씩 가격을 낮춘 매물이 나와도 매수자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투자수요가 대부분이라 양도소득세 중과에 민감한데다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의 재당첨까지 금지하면서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거래가 안된다. 시세보다 1억원 이상 내린 일부 '급급매'들이 한두건씩 팔린 정도고, 후속 매수문의가 거의 없다.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주 종전 시세보다 최고 1억3천만∼1억4천만원 떨어진 급매물이 2건 거래된 이후 소강상태다.
대책 발표 전 15억6천만∼15억7천만원을 호가했던 이 아파트 112㎡의 경우 최근 14억3천만원과 14억5천만원에 2건이 팔린 뒤 14억5천만원 이상에 나온 매물은 거래가 안된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다음달 정비계획 인가 심의가 예정돼 있어 매도·매수자들 모두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며 "일부 사정이 급한 투자자들이 급매물을 내놓고 있는데 대부분의 다주택자는 내년 4월 전까지 타이밍을 보는 것 같고 매수자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며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시세보다 2억원가량 싼 '급급매'만 팔렸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며 대책 발표 전 최고 14억8천만원을 호가하던 102㎡의 경우 지난주 12억7천만원, 12억7천500만원에 각각 거래됐다.
현지 중개업소 대표는 "단기 투자 목적의 다주택자가 다급해서 내놓은 물건인데 내년 4월 이후 파는 것보다 낫다며 양도세 50%를 내고 매도하더라"며 "매수·매도 자체가 위축돼 있어서 이런 급급매가 아니면 거래가 안된다"고 말했다.
현재 이주 중인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는 대책 발표 전 시세에서 4천만∼1억원 빠진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매수세가 뜸하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정부가 예외조항을 소급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9월 말 이후 거래를 못할 줄 알았던 둔촌 주공 아파트도 착공 전까지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해졌다"며 "이 때문에 가격이 추가 하락세는 멈춘 상태인데 거래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조합설립인가나 사업계획인가 신청 등으로 아예 거래가 불가능해진 강남구 개포동과 잠원·반포동 일대 등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개포 주공 1단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당일(3일)부터 지위양도가 금지돼 조합원들이 패닉에 빠진 상태"라며 "다주택자에게 내년 4월 전까지 집을 팔라고 하면서 팔지도 못하게 묶어 버리는 건 모순이 아니냐며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세보다 3억원 이상 내린 '현금청산' 대상 매물도 등장했다.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 신반포 10차 57㎡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지여서 거래가 불가능한데 시세(10억5천만원)보다 3억원 이상 싼 7억원짜리 급매물이 나온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 대표는 "집주인이 다주택자이고 사정이 급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단 싼 값에 매물을 던져본 것 같다"며 "그러나 조합원 지위가 없는 매물이어서 팔리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재건축 시장이 약세를 보이면서 지난주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올해 1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0.25% 하락했다.
강북 재개발 시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
동작구 흑석뉴타운 일대도 매수문의가 자취를 감췄고,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도 2천만∼5천만원 내린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매수 문의조차 없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한남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그동안 안 팔겠다고 버티던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고는 있는데, 가격이 떨어질지 예측이 안 된다"며 "대책 발표 이후 한 건도 거래를 못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대책 발표 전에 거래된 일부 매물 가운데서는 집값 하락을 우려한 매수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집값이 비쌀 때 '상투를 잡았다'며 계약금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남동의 또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우리 중개업소에서만 3건의 거래가 계약금만 전달된 상태에서 계약이 해지됐다"며 "일부 매수자들은 살 때보다 가격이 떨어졌다면서 중개료도 주지 않을 정도로 여러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 일반 아파트도 '거래 뚝'…분당 등 신도시 풍선효과 미미
서울 일반 아파트들도 일부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역시 거래는 안된다.
서초구 잠원동 훼미리 아파트 112㎡는 대책 발표 전 시세(12억원)보다 5천만원 낮춘 11억5천만원짜리 매물이 등장했지만 살 사람이 없다.
인근 중개업소 대표는 "다주택자 가운데 일부가 싼값에 매물을 내놓지만 매수문의 자체가 거의 없다"며 "시장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일대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고 매수자들은 더 떨어질 때까지 안 산다고 관망하고 있다"며 "매수자도 매도자도 실종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8·2 대책으로 살 사람, 팔 사람 다 거래가 어렵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흑석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도자들이 매물을 내놔도 매수자들 역시 대출이 30∼40%로 축소됐고 정비사업 조합원·일반분양분에 대한 재당첨 금지도 있어 살 수가 없는 구조"라며 "매도자에게 집을 팔라고 하면서 매수자들이 살 수 없게 만드는 앞뒤 안 맞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이른바 '풍선효과'를 기대했던 분당·평촌 등 신도시 시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집주인들이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역에서 빠져 있다는 기대심리로 호가를 높여 매물을 내놓긴 하지만 매수세가 없다.
분당 서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매물이 거의 없다가 대책 발표 후 호가를 2천만∼3천만원 올린 매물이 한두 건씩 나오는데 매수자들은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면서 거래를 안한다"며 "서울의 집값이 하락하고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신도시만 시장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평촌 평촌동 향촌마을 현대5차 105㎡는 6억∼6억2천만원으로 대책 발표 전보다 호가가 소폭 상승했지만 거래가 안된다.
인근 중개업소 사장은 "대책 발표 전부터 지금까지 나오는 매물이 거의 없고, 매수자들도 관망세"라며 "반사이익은 아직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9∼10월 이후 매물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가격 하락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아직 다주택자들도 임대사업을 하는 게 좋을지, 내년 4월 전에 파는 게 나은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라며 "9월 주거복지로드맵에서 발표할 임대주택 사업자 지원 혜택 등을 보고 매도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도 "다주택자들이 매도 또는 보유의 득실을 충분히 저울질한 뒤 가을 이사철 이후 매물을 본격적으로 내놓을 공산이 크다"며 "그 전까지는 매수자들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거래절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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