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는 영국 식민지배의 도구" 광복 70주년 맞은 인도

입력 2017-08-15 09:31   수정 2017-08-15 09:57

"카스트는 영국 식민지배의 도구" 광복 70주년 맞은 인도

샤시 타루르 '암흑의 시대'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약탈적인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올해로 독립 70주년을 맞은 인도는 우리나라와 닮은 데가 많다. 독립기념일도 8월 15일로 우리의 광복절과 같다.

일본군 위안부, 식민사관 등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로 갈등을 겪고 고민하는 우리처럼, 인도 역시 영국 식민지배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가해자의 위선을 깨뜨리기 어려운 만큼 이해관계에 따라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내부의 숙명적 태도 역시 강고하다.

인도의 유력 정치인이자 유명 작가인 샤시 타루르가 펴낸 신간 '암흑의 시대'(젤리판다 펴냄)는 200년에 걸친 영국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안팎의 위선과 거짓 논리를 조목조목 끈기 있게 파고들어 간다.

저자는 식민통치가 인도에 근대적 경제체제와 정치적 통합, 민주주의를 가져다줬다는 영국 식민지배 옹호론에 치열하게 맞선다.

이 같은 식민지배 옹호론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없었다면 한국은 근대화되지 못했을 것이란 논리로 발전한다. 이 같은 논리는 해방 후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데도 사용된다.

책은 인도는 물론 우리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도의 번성했던 제조산업의 파괴 위에서 이뤄졌다. 18세기 영국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인도는 섬유, 해운,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영국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18세기 초 인도는 전 세계 섬유 거래의 25%를 차지했으며, 조선업과 해운업은 번성했고, 철강 역시 뛰어난 품질로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 경제적 약탈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각종 세금과 규제 장치를 동원하고 때론 인도인 숙련공의 손가락까지 잘라 인도의 제조업을 약화시키고, 빼돌린 원자재로 자국의 산업을 키웠다. 그 결과 인도가 차지한 세계 제조업 수출 비중은 18세기 초 27%이던 것이 독립할 무렵 2% 수준으로 감소했다. 인도는 근대적 경제체제를 발전시킬 기회를 빼앗긴 채 기껏해야 서구 자본주의의 하부 구조물로 편입됐다.

책은 인도의 통일이 영국 식민통치의 성과라는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정치적 분열은 인도를 식민지배의 희생물로 만든 주된 원인이지만, 영국이 인도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아전인수라는 것이다.

영국이 인도 식민지배 200년 동안 일관되게 견지한 통치 전략은 '분열시켜 지배한다'였다. 이에 따라 종교, 인종, 지역 간 차별을 강화하고 적대감을 조장했으며, 그럴수록 지배에 유리했고 영국의 이익에 기여했다.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타고난 천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카스트는 확립된 사회제도가 아니었다. 경계는 느슨하고 유동적이었다. 카스트가 절대적인 신분제도로 굳어진 건 영국이 식민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삼으면서다.

과거 수드라(노예)는 마을을 떠나면 본인의 카스트가 따라오지 않았지만, 식민지배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평생 수드라로 살 수밖에 없게 됐다. 군대도 철저하게 카스트를 기초로 편성됐다.

전에는 없던 카스트 간 경쟁이 생겨나고 격화됐다. 저자는 "인도 사람들이 19세기 후반보다 더 노골적으로 카스트를 의식했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카스트는 200년의 식민지배를 거치는 동안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변했고 사회 전반에 깊은 분열의 골을 남겼다.

계급뿐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종교 간, 지역 간의 차이도 강조되고 분열이 조장됐다. 과거 인도는 서로 다른 종교 집단 간 배타적이지 않았고 결혼, 축제, 음식, 심지어 신앙에서도 비슷한 사회적, 문화적 풍습을 공유했다.

하지만 영국의 집요한 분열 정책으로 인한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독립 후 인도를 3개국(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으로 나뉘게 했으며, 이후 네 번의 전쟁과 핵 무장, 테러를 낳았다.

영국이 인도에 스스로는 성취하지 못했을 민주주의를 가져다줬다는 주장은, 영어, 차(茶), 크리켓이란 문명의 혜택이 식민지배의 보상이라는 주장만큼 어처구니없다고 책은 지적한다.

영국은 1919년 마지못해 인도인들에게 의회를 구성할 제한적인 선거권을 부여할 때조차도 종교에 따라 투표권을 제한하는 분리선거구제를 도입해 종교 간 갈등을 조장하고 인도에 민주주의가 온전히 뿌리내리는 걸 가로막았다.

그러나 책은 이 같은 논박이 역사에 대한 보복이나 복수, 혹은 과거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보복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역사 그 자체가 보복이 된다."

어쩌면 우리에겐 다소 물러 보일지 모를 저자의 말이, 그가 누구도 가지 않았던 비폭력주의의 길을 갔던 마하트마 간디의 정치적 후손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김성웅 옮김. 456쪽. 2만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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