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빈곤 활동가 아마미야 기린의 '살게 해줘!' 개정판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플래카드를 든 젊은이 200여 명이 외친다. "기업은 벌고 있지만 나는 전혀 벌고 있지 않다!" "급료가 낮아서 결혼 같은 것도 못해!" "아이도 낳지 않겠다"
서울 광화문이나 여의도 국회 앞 시위 현장인가 싶은 이 장면은 2006년 8월 일본에서 열린 프레카리아트 시위 풍경이다.
프레카리아트는 이탈리아어로 각각 불안과 노동자를 뜻하는 프레카리오(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토(Proletariato)를 합한 단어다.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이들을 뜻하는 이 조어는 21세기 들어 일본을 비롯한 각국 젊은이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당시 일본은 정식으로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바 '프리터',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 노숙인, 과로 자살 등의 문제가 심화하고 있었다.
작가 겸 반(反)빈곤 활동가인 아마미야 기린(42)도 한때는 식당, 잡화점, 노래방, 캬바쿠라(술을 마시는 클럽) 등을 전전했던 프리터였다. 26세에 낸 자전적 에세이가 주목받으면서 그는 7년간 계속된 불안정한 삶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2007년 출간한 '살게 해줘!'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출구도 찾지 못하는 자국 젊은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부당한 초과노동을 강요당했던 파견직 노동자가 자살을 택하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은 관리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파견업체는 해당 노동자가 어디서 일하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과로에 시달리던 끝에 결국 자살을 택한 스와 다쓰노리의 사례는 정규직 또한 얼마든지 낭떠러지 끝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구인난에 시달린다는 일본의 풍경과는 차이가 있지만, 2000년대 중반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 위에 현재 한국 젊은이들의 얼굴이 겹치는 듯하다.
특히 프리터 생활을 하던 중 2년 정도 우익 단체 활동을 했다는 저자의 고백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어디와도 연결돼 있다는 인식 없이 그저 표류하고 있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손쉽게 국가라는 공동체와 접속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야스쿠니 신사도 그러한 감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살게 해줘!'는 201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며, 6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잡지 시사인 인터뷰에서 추천했던 도서 중 하나로, 올해 대선을 앞두고 출간된 '문재인의 서재'에도 포함됐다.
김미정 옮김. 344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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