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증오의 시대'·'생존의 시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부녀들 사이에 주먹다짐이 생기고, 관리들에 대한 평가가 저자를 좌우하고, 헛된 소문들이 길에 횡행했다."
명나라 말기 학자인 유종주(劉宗周, 1578∼1646)는 세태를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또 다른 학자인 주학령(朱鶴齡, 1606∼1683)은 "백성이 굶주린 승냥이 같아서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듯하다"고 기록했다.
한족이 세운 마지막 왕조인 명(1368∼1644)의 몰락은 비참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친 능력 있는 관리들이 있었고 화려한 예술이 꽃피웠지만, 황제의 통치는 날이 갈수록 포악해졌다. 이에 주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자오위안(趙園)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쓴 '증오의 시대'와 '생존의 시대'(이상 글항아리 펴냄)는 명 숭정제(1628∼1644) 말기부터 청 강희제(1662∼1722) 초기까지의 사회상을 분석한 책이다. 1권인 증오의 시대는 명의 붕괴에 초점을 맞췄고, 2권인 생존의 시대는 청나라 초기에 사대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조명했다.
저자는 증오의 시대에서 명나라 후기의 정치 상황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현상과 언론 환경까지 폭넓게 살핀다.
그는 사대부들이 왕조 교체로 인해 죽음으로 절의를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삶을 선택했다고 강조한다. 또 누군가는 "곤경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생존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어 생존의 시대에서는 망국의 백성을 의미하는 '유민'(遺民)이라는 개념으로 사대부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민 중에는 출가해서 승려가 된 사람이 있었고, 속세와 이별하겠다는 선언을 하고는 모든 인간관계를 끊은 자도 있었다. 그는 이 같은 유민의 생존 방식을 소개한 뒤 그들이 쌓은 학문적 성과도 함께 설명한다.
저자는 "사대부들은 생존의 도덕적 의미를 중시하면서 그 시간과 시대, 당시의 정치와 맺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정하려고 했다"며 "새로운 학술 가치의 창조는 명나라 유민이 기여한 특수한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에서 1999년 출간된 원서의 제목은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다.
역자인 홍상훈 인제대 교수는 후기에서 주석도 없고 문체도 뒤죽박죽인 이 책은 번역을 위한 텍스트로서는 최악이었다고 적었다. 공들여 우리말로 옮긴 흔적이 역력하지만, 번역본 역시 중국 역사와 사상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읽기 쉽지 않다.
증오의 시대 664쪽, 3만2천원. 생존의 시대 760쪽, 3만6천원.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