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감정 능력·정책 투명성 높여야…전문 인력·예산 필요"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모두 330건에 달하는 국보 중에 비어 있는 지정번호가 두 개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지정됐던 제274호와 제278호다.
국보 제278호였던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은 2010년 보물로 강등됐으나, 국보 제274호 유물은 국가지정문화재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물품은 모조품으로 규명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귀함별황자총통'(이하 별황자총통)이다.
별황자총통은 해군 충무공해전 유물발굴단이 경남 통영에서 발견했다는 조선시대 청동 대포다. 해군은 1992년 8월 길이 89.5㎝, 무게 65.2㎏의 별황자총통을 찾아냈다고 발표하면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거북선의 실체를 알아내는 데 단서가 될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과학적 성분 분석을 하지 않은 채 이 총통을 곧바로 국보로 지정했다. 출토 지점이 명확하고 대포에 명나라 신종 때 연호인 '만력'(萬曆)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형태가 16세기 유물과 흡사하다는 점이 지정 근거였다.
그러나 1996년 별황자총통 발굴은 유물발굴단장과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골동품상, 수산업자 등이 공모했던 희대의 사기극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이 현대에 만들어진 총통을 바다에 빠뜨렸다가 건져낸 뒤 조선시대 유물이라고 허위 발표했다고 밝혔다.
당시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대포와 달리 별황자총통에는 불에 약한 아연이 8%나 포함됐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은폐 의혹에 시달렸다.
이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 또다시 보물급 유물의 모조품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청이 2015년 4월 미국 시애틀미술관으로부터 돌려받은 덕종 어보가 1471년에 만들어진 원품(原品)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다시 제작된 신품(新品)으로 드러났다고 밝힌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7월 미국에서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 현종 어보와 환수 이후 일반에 한 차례도 선보이지 않았던 덕종 어보를 함께 전시하는 자리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18일 열린 간담회에서 "과학적 성분과 외형 분석을 거쳐 신품으로 분류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1월에 문화재청에 보고했고, 2월에 박물관 누리집에 있는 관련 정보를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약 2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별황자총통과 덕종 어보 사건의 공통점은 심층적인 감정을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유물의 제작 시점과 특성을 규정해 발표했고, 기존 입장을 뒤집을 수 있는 분석 결과가 나왔음에도 일반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군이 주도한 별황자총통과 달리 덕종 어보는 문화재청이 환수부터 문화재 지정, 조사까지 모두 담당했다.
덕종 어보에 대한 국민적 비난과 공분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감정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왕실의 유물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덕종 어보가 재제작품으로 밝혀졌는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감추려 했다는 데 있다.
김 관장은 "환수하기 전에는 성분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외형만 관찰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덕종 어보를 받아온 뒤 과학 분석을 미룬 이유와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반년 넘게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어보와 국새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거의 없다"며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늘리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는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장고에 지광국사탑의 사자상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아 질타를 받은 바 있다"며 "오류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최대한 빨리 알리는 등 정책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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