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기후 속 갈색반점 탄저병 확산…충주 사과 20% 가까이 피해
포도·복숭아 알 터지고 낙과 늘어…당도 떨어져 소비자 외면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서 6천여㎡의 사과농사를 짓는 임종식(60)씨는 요즘 자고 나면 번지는 탄저병 때문에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리면서 탄저병균이 빠르게 퍼져 수확을 코앞에 둔 사과가 겉잡을 수 없이 썩어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농사짓는 사과는 추석 전 출하하는 조생종 '홍로'다.
이달 말 수확을 앞두고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자랐지만, 최근 궂은 날씨로 인해 20% 가까이 썩어들어가는 추세다.
탄저병은 사과 표면에 갈색 반점이 생기면서 과육이 썩는 병이다. 병원균(포자)이 주로 빗물을 타고 퍼지기 때문에 수확을 앞둔 이맘때 습한 날씨는 치명적이다.
임씨는 "지난 달부터 하나 둘 탄저병 증세가 나타나더니, 20여일 만에 사과 10개 중 2개에 반점이 생겼다"며 "날이 갤 때마다 방제약을 뿌려주지만, 연이어 내리는 비 때문에 탄저병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상청 분석 결과 이달 들어 충주에 11일 동안 144.5㎜의 비가 내렸다. 구름 낀 날이 많아 일조시간은 105.8시간으로 작년 같은 기간 180시간에 비해 64.2시간 줄었다.
장마철인 7월 내린 비도 464.3㎜(22일)로 작년 7월 374㎜(16일)보다 많다. 흐리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과일나무는 수세가 약해지고 병이 생기기 쉬운 조건이 형성됐다.
여름 과일인 포도밭에도 알이 터지는 열과(熱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포도나무가 과다하게 수분을 빨아들여 발생하는 열과는 포도 껍질이 쩍쩍 갈라지면서 썩기 때문에 출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오명주 영동군 농업기술센터 연구개발팀장은 "이번 주 수확을 시작한 노지 포도에 열과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며 "비가 온 뒤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가 1∼2차례 이어지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잇단 비로 인해 복숭아는 물을 먹어 제맛이 나지 않는다. 꼭지가 물러지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과 피해도 심해지는 추세다.
옥천군 복숭아연합회 조명환(72) 회장은 "당도 높은 '천중도'·'황도' 품종은 대개 13브릭스 이상을 유지해야하는 데, 최근에는 10브릭스까지 단맛이 떨어진 상태다"며 "배수가 안 되는 밭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물 복숭아'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궂은 날씨로 인해 과일 출하가 줄면서 가격은 작년 수준을 다소 웃돈다.
22일 농협 충북유통 매장에 전시된 천중도 복숭아(4.5㎏)는 2만4천800원으로 전년(2만3천800원)보다 4.2% 값이 올랐고, 캠벨어리 포도(3㎏)는 9천800원으로 전년(8천900원)보다 10.1% 높은 값에 팔린다.
충북유통 관계자는 "과일 당도가 떨어지면서 소비자가 선뜻 구매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출하량도 그만큼 줄어 가격은 강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잦은 비가 전반적인 과일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충북 농업기술원 신현만 과수팀장은 "요즘같은 날씨에서는 나무가 광합성으로 생산하는 탄수화물보다 호흡을 통해 소비하는 양이 많아 과일로 가는 영양분을 빼앗게 된다"며 "성장이 불량하고, 당도가 떨어지거나 고유의 색이 나오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기 나무가 충분한 영양을 확보하지 못하면 내년 생장이나 꽃눈을 맺는데도 악영향을 받게 된다"며 "과일 농사에는 백해무익한 비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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