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보호주의는 배넌의 창작이 아닌 시대적 산물"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배너니즘(bannonism)은 존속할 것이다. 오히려 번창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막후에서 컨트롤해온 백악관의 실력자 스티븐 배넌 수석전략가가 전격 퇴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노선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으나 오히려 배넌주의(배너니즘)가 백악관 내외에 더욱 팽배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칼럼니스트 가이디언 래크먼의 칼럼을 통해 배넌이 추구해온 핵심 정책 이념들은 그의 퇴장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진보세력들이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래크먼은 이른바 무역과 문화, 그리고 실제 세계 전쟁으로 요약되는 배너니즘의 위협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배넌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전쟁'들은 시대의 광범위한 경제적, 사회적, 국제적 긴장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며 배넌은 단지 이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논란을 빚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발언도 배넌의 영향 때문이라기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여론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CBS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의 68%가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양비론'에 공감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미국 사회에 백인층의 분노가 예상보다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배넌의 퇴진과 관계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이들 세력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배넌은 떠났지만, 그가 주도한 무역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배넌은 자신에 대한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지칭을 거부하는 대신 '경제적 민족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상당수 경제적 민족주의자들이 아직 백악관에 남아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넌의 퇴진으로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도, 근본적으로 무역전쟁이 미국의 장기적 경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배넌이 퇴진한 바로 그 날 백악관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무역팀은 같은 경제적 민족주의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USTR)와 대중 강경론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등이 이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보호주의는 중국의 증대하는 시장 점유 전망과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토대로 조성된 것이며 배넌이 고안해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래크먼은 무역에 관한 한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진보계 버니 샌더스조차도 트럼프 진영과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래크먼은 배넌의 퇴진으로 무슬림권을 겨냥한 미국의 대테러 및 이민 정책이 위축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신 러시아나 중국 등을 상대로 하는 전통적인 대외정책 노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결과로 오히려 남중국해와 북한, 중동 등지에서 무력 분쟁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고립주의 외교노선에서 벗어나는 대신 러시아나 중국과의 경쟁을 통해 대외적으로 무력 분쟁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래크먼은 배넌과 같은 논쟁적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흥미롭긴 하지만 미국 사회의 불평등 증가나 인구구조 변화, 그리고 중국의 부상 등 미국 사회를 대내외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면서 이는 배너니즘이 그의 퇴진 후에도 더욱 번창할 것이라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yj378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