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지낸 우리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강도 높은 '권한 분산' 주장
평소 '법관 독립' 강조…"인사제도 완벽하지 않아" 개선 필요성 피력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가 대법원장의 가장 큰 힘이자 법원 안팎의 최대 논란거리인 '제왕적 인사·사법행정 권한'을 어떻게 행사할지가 관심사다.
사법개혁의 핵심이자 정점인 이 문제에 대해 김 후보자는 아직 공개적으로 뚜렷한 입장을 낸 적이 없다.
대법원장은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진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 3천여명의 임명권과 승진·전보 권한을 갖고 있으며 재임용 여부도 결정한다.
대법관 13명을 임명 제청하고 헌법재판관 3명,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3명, 중앙선거관리위원 3명에 대한지명권도 행사한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임명한다. 1만5천여명의 법원공무원 인사까지 결정한다.
사법부 전체를 관리하는 사법행정권도 집중돼 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인사, 조직, 예산, 회계, 시설관리 등 모든 행정작용을 결정한다. 이와 관련한 일부 권한을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 등에게 위임할 수 있다. 중요한 사무는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처리한다.
김 후보자가 회장을 맡았던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이 같은 과도한 권한 집중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보면 향후 '김명수 대법원'의 개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우리법연구회가 2005년 펴낸 논문집 등에 따르면 회원들은 현행 사법부 인사제도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며 ▲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 ▲ 근무평가제도 개선 ▲ 대법원장 인사권 축소 등 개혁안을 다수 제안했다.
판사들이 승진이나 보직 배치 권한을 가진 상급자에게 목을 매며 "심하게 표현하면 그 인사의 방향에 따라 법관들의 성향이 변화할 정도"('법관 근무평정제도에 대한 소고' 논문)로 재판 독립이 훼손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관의 꽃'이라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행정부 차관급으로 전용차량 지급, 근무평정 대상 제외, 명예퇴직 대상 제외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연수원 동기 판사 중에서도 3분의 1 이하만 될 수 있는 좁은 문인 데다 기수가 내려갈수록 승진 확률이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개선 요구가 빗발쳐왔다.
연구회 회원들은 대법원장에게 승진 등 일선 판사의 인사권뿐 아니라 동료 대법관, 헌법재판관을 임명제청할 수 있는 권한도 줘선 안 된다며 인사권을 일선 법원장에게 분산하거나 외부 기구가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법 부장으로 승진하는 코스와 승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근무하는 코스를 따로 운용하는 '이원화' 방안을 추진했지만, 후반기 들어 유야무야 되면서 판사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됐다.
우리법연구회의 개혁 구상은 그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실상 그대로 계승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은 지난 3월 학술대회에서 "대법원장의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 행사에 민주적 통제장치가 전혀 없는 상태"('법관의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논문)라며 인사권 등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를 계속 추진하고 법원 내 주요 보직 분담도 법원장 결정이 아닌 판사들 간 협의·선거로 결정하는 한편,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창설해 대법원장의 '손발'인 법원행정처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당시 "우리나라 사법부의 인사제도가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는 등 개혁 주장 취지에 동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 후보자가 춘천지법에 부임해 법원장과 판사 사이의 가교 구실을 맡는 '기획법관'을 선발할 때 지명하지 않고 판사들이 뽑도록 하는 등 '실제 적용'한 사례도 있었다.
다만, 실제로 대법원장의 인사·사법행정 권한을 얼마나 분산하고 어떤 단계를 거쳐 실천에 옮길지는 예단이 쉽지 않다.
또 평소 '법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김 후보자가 법관들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청사진을 제시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의 구상은 국회 청문회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김 후보자가 실제 대법원장이 된 이후 이 같은 급진적인 개혁안을 수용할지, 점진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으려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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