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에 우선 순위 밀리면 장기화 가능성…양측 모두 명분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놓고 펼쳐지고 있는 한국과 미국 통상당국의 '기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한미 FTA 개정협상 논의를 위한 공동위원회 첫 특별회기가 열렸지만 양측이 아무런 협의를 하지 못한 채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을 공식 요구했지만 우리 측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부터 하자고 역제안했다.
미국 대표단은 귀국 후 이에 대한 답변을 정리할 방침이다.
미국 측은 FTA 개정협상 개시에 초점을 맞췄을 뿐 한국 측 조사 제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방한하지 않은 탓에 이날 대표단이 한국 측 제안에 곧바로 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처럼 미국 측에 '공'을 넘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조사 제안에 대한 미국의 답을 기다리겠다. 우리 페이스대로 답을 갖고 대응해 나가겠다"며 서두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한미 FTA 개정협상 개시 여부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를 보임에 따라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프타(NAFTA) 재협상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국 측 주장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면밀하게 분석해서 답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장고 끝에 조사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관련 작업에만 다시 수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나프타 재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면 미국은 한미 FTA 개정협상 관련 사안을 더 뒤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나프타 재협상 동향이 한미 FTA 개정협상 일정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으로서는 한미 FTA 개정협상보다 나프타가 훨씬 더 급한 사안"이라며 "나프타 재협상 관련 상황에 따라 한미 FTA 개정 논의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미 FTA 개정협상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확실한 만큼 일단 개정협상 개시까지는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사 제안을 거부한 뒤 '한미 FTA 폐기' 같은 강수를 제안해 한국을 개정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차장은 "나프타 재협상이 주요 변수이기는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협상을 원한다고 한만큼 여러 경로로 우리를 압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개정협상 일정의 또 다른 변수는 '여론을 포함한 정치적 변수'가 꼽힌다.
한국과 미국 모두 개정협상에 대해 강한 톤으로 자기 입장을 드러내며 맞선 만큼 '기 싸움'을 풀고 접점을 찾으려면 각자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양쪽이 이 같은 명분을 쌓으려면 역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통상전문가는 "한국은 '당당하게 협상을 벌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끔찍한 거래'로까지 지칭했기 때문에 양쪽 모두 현재 처지에서 쉽게 물러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계속 기 싸움을 벌이다가는 협정 폐기 같은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돼야 양쪽이 본격적으로 공동조사나 개정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핵,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같은 정치적 변수도 한미 FTA 개정협상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전문가는 "한국과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우방이라 한미 FTA를 놓고 무작정 계속 맞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한미 통상당국으로서는 주변 정치적 상황도 깊이 있게 고려해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공동조사 제의 자체는 타당한 문제 제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무턱대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미국 측 답변을 고려해서 현실적인 협상 전략을 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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