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규모 4.0에 건물 수 채가 와르르 무너지며 4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난 이스키아섬 지진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만연한 불법 건축물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나폴리만에 위치한 고급 휴양지 이스키아섬에서는 지난 21일 규모 4.0의 지진으로 교회와 주택, 호텔 등이 붕괴하며 2명이 죽고, 총 4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또, 2천6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프란체스코 페두토 이탈리아 지질학협회 회장은 "이런 약한 지진에 사람들이 죽은 건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지진엔 아무런 피해도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예방 작업에 투입됐으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작았을 것"이라며 1년 전 중부 산간 지방을 강타한 강진 이후 복구와 예방 노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작년 8월24일 아마트리체를 비롯한 중부 아펜니노 산맥 지대에서는 규모 6.0의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매몰돼 299명의 사망자가 나온 바 있다.
그는 "그때 이후로 말은 많았으나 1년이 지나도록 거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정부의 무능함을 꼬집었다.
이탈리아 건축자문위원회의 파브리치오 피스톨레시 위원장은 이스키아섬의 피해가 컸던 이유로 상당수 건물들이 내진 설계 조항이 채택되기 전에 건축된 것과 함께 이 지역에 만연한 불법 건축 관행을 꼽았다.
그는 TV뉴스채널 스카이 TG24와의 회견에서 "캄파니아 주에서 20만 가구 이상이 불법 건축됐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 불법 건물들은 내진 규범을 깡그리 무시한 채 지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스키아섬은 나폴리를 주도로 하는 캄파니아 주에 속해있다.
알도 데 키아라 전 나폴리 지검 검사는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최근 이스키아에 건축된 건물 대부분이 허가 없이 지어졌으며, 상당수는 불량 시멘트가 사용됐다"고 폭로했다.
데 키아라 검사는 "특별히 강한 진동이 아니어도 건물 붕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해왔는데, 불행히도 우리가 우려하던 바가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이탈리아통계청(ISTAT)에 따르면 2015년 이탈리아에서 신축된 주택 가운데 약 20%가 불법 건축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캄파니아와 시칠리아 등 남부 지역은 불법 건축물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이 불법 건축물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환경 단체인 레감비엔테는 이스키아 지진 직후 성명을 내고 "이스키아는 항상 불법 건축과 마구잡이 시멘트배합, 불법건축물의 미처벌 등의 상징이었다"고 강조, 지진 피해가 커진 원인을 불법 건축물에 돌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재료비와 인건비를 아끼고, 인허가 등에 드는 행정처리 비용과 세금을 절감하기 위해 불법 건축이 성행하고 있으나, 정부는 불법 건축물의 소유주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제대로 단속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이스키아섬에서도 7년 전 시 당국이 불도저를 동원해 불법 건축물 철거를 집행하려 했으나, 불법 건물 소유주들은 불도저에 물병 등을 던지며 당국과 강경 대치하며 철거를 무산시켰다.
한편, 이스키아섬의 6개 시 시장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지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를 불법 건축과 연결시키는 것은 '가짜뉴스'"라며 "이번 지진으로는 1883년 강진으로 이미 손상을 입은 교회를 비롯해 오래된 건물들이 주로 피해를 봤다"고 반박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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