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 반환 목표로 공동경제활동 구상했던 日 '발만 동동'
(모스크바·도쿄=연합뉴스) 유철종 김병규 특파원 = 러시아가 일본과의 영토분쟁 지역인 남쿠릴열도(쿠릴4개섬/일본명 북방영토)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자 해당 지역에서 양국 공동경제활동을 구상해온 일본이 당황해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 통신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전날 쿠릴4개섬 가운데 하나인 시코탄에 경제특구 성격의 '선도개발구역'(TOR)을 설치하는 총리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쿠릴열도가 속한 극동 사할린주(州)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를 방문해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현지 열성당원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바로 이곳에서 총리령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선도개발구역은 극동 지역에 분야별로 특화된, 경제자유구역(FEZ)과 유사한 산업기지들을 조성해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세제 상의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국내외 입주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러시아 정부의 극동 개발 정책 가운데 하나다.
쿠릴열도가 속한 사할린주 주지사 올렉 코줴먀코는 "선도개발구역 지정으로 쿠릴 섬에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될 것"이라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사할린주 주정부는 수산물가공업체 '오스트로브니'가 투자 의향을 밝혔다면서 이 업체가 약 74억 루블(약 1천400억 원)을 투자해 시코탄 선도개발구역에 수산물 가공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업체는 올해 부두 시설 개보수, 수심 확장 사업 등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3단계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약 7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체는 이곳에서 생산된 수산물 가공품을 러시아 국내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일본, 중국, 한국 등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남쿠릴열도를 공동경제활동 지역으로 만들려던 일본은 러시아의 이런 일방적 특구 지정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은 러시아가 실효지배하는 쿠릴열도를 러시아와 함께 개발해 숙원인 '북방영토 반환'으로 가는 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작년 12월 일본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쿠릴열도에서 '특별한 제도'에 근거한 공동경제활동을 벌이기로 합의한 뒤 양측은 세부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러시아는 자국법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은 이 경우 러시아의 열도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돼 새로운 규칙을 만들자고 제안해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영토분쟁 대상 섬 가운데 하나인 시코탄을 경제특구로 지정한 것은 러시아가 향후 일본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우대 조치가 있는 경제특구에서는 외국 기업의 유치가 쉽다. 중국과 한국이 이미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특구 지정에는 다음 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서 개최 예정인 러·일 정상회담 전에 일본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러시아 외교소식통은 이에 대해 "일본과의 공동경제활동을 지향했던 방침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일본 외무성의 간부는 "공동경제활동 협의가 길어지면 일본을 빼고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야구의) 견제구"라고 지적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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