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재용, 경영권 승계 작업 도움 바라고 박근혜·최순실에 뇌물 제공"
삼성 전직 임원 모두 유죄…최지성·장충기 징역 4년…박상진·황성수 집유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황재하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소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형량은 유죄 판단 시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졌다.
법원은 핵심 혐의인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뇌물 유죄로 판단했다. 또 최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관련한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뇌물수수자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유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공소사실과 관련해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다만, 개별 혐의 가운데 일부 사실관계는 무죄로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겐 각 징역 4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실형이 선고됨에 따라 법정에서 구속됐다.
재판부는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은 모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작업이었고, 이는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또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의 승계 작업이 사회 일반에 공론화돼 있었고 청와대에서도 관련 보고서 등을 작성한 점에 비추면 박 전 대통령도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배경을 토대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이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에 나선 것은 승계 작업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바라고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독대 과정에서 승마 지원을 요구한 것을 삼성 측도 정유라 지원 요구로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실무진에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 이뤄지는 동안 이재용은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하고 승마 지원에 대한 포괄적 지시를 했다. 최지성에게서 승마 지원 보고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며 "결국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해 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특검이 주장한 뇌물액 77억9천735만원 가운데 마필 운송 차량 구입비(5억원)는 뇌물로 볼 수 없다며 이 부분을 제외한 72억원을 뇌물액수로 인정했다. 특검이 주장한 뇌물 약속액 213억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그와 동반한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유죄로 인정한 횡령액은 삼성 소유로 판단한 마필 일부와 차량 구매비 등을 제외한 64억원이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가 설립했다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천800만원을 후원한 부분도 "정상적인 단체가 아닌 것을 알고 지원했다고 보인다"며 뇌물로 인정하고 역시 횡령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나가 승마 관련 지원 등을 보고받지 못했다거나 최씨 모녀를 모른다고 대답한 것도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에 대해선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증거들에 의하면 미르·K재단이 최씨의 사적이익 추구 수단이었고 대통령이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게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단이 최씨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설립·운영된다는 걸 이재용 등이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출연했다기 보다 전경련이 정해준 액수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을 끝낸 뒤 이번 사건에 대해 '현대판 정경유착'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이 밀접히 유착한 것"이라며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정경유착이 과거사가 아닌 현실에서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상실감은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삼성 임원들로서 사회에 미친 경제적 영향력도 크다"고 질타했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해선 "청탁 대상이었던 승계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지위에 있고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추진이 개인 이익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도 양형에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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