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날' 폐기 및 기념물 글귀 수정 요구에 총리 강력 반발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 사회가 원주민들과 관련한 '역사 다시 쓰기' 논쟁에 휘말렸다.
일부에서 원주민들과 화해를 위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며 압박 수위를 높여오자 보수 연방정부의 맬컴 턴불 총리는 풍부한 역사의 일부를 지우려는 "스탈린식 활동"이라고 거칠게 비판해 논쟁은 오히려 가열되는 모습이다.
호주 내 소규모 지방자치단체인 카운슬(council)의 일부는 영국함대가 호주 대륙에 첫발을 디딘 1788년 1월 26일을 사실상의 건국기념일인 '호주의 날'로 기념하는 데 대해 최근 잇따라 반기를 들고 있다.
주로 녹색당이 이끄는 이들 카운슬은 원주민들에게는 이날이 '애도의 날'로 생각될뿐이라며 사회 통합을 이유로 '호주의 날'을 속속 폐기하고 대체일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방 정부가 통상 이날에 여는 시민권 수여식의 개최 권한을 박탈하며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호주의 날' 폐기 움직임은 더 확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영 ABC 방송의 원주민문제 담당 에디터인 스탠 그랜트가 시드니 한복판 공원인 하이드 파크에 세워진 제임스 쿡 선장 동상을 포함한 일부 역사기념물들의 기술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은 커졌다.
원주민 출신인 그랜트 에디터는 칼럼을 통해 영국인 탐험가 쿡 선장 동상에 새겨진 "1770년에 이 영토를 발견했다"는 글귀가 잘못된 것이라며 수정을 촉구했다.
이 글귀는 원주민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원주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미국에서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로버트 리 장군 동상과 남부 연합기를 둘러싸고 갈등이 커진 것도 호주 내의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러나 턴불 총리는 '호주의 날'을 폐기하고 동상의 글귀를 수정하자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동상 등 기념물들이 호주 역사의 일부로 이들을 존중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턴불 총리는 25일 한 방송에 출연해 "나는 (ABC 방송 에디터인) 스탠을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그가 한참 잘못 짚었다. 우리의 역사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잘못됐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턴불 총리는 또 이런 움직임이 큰 세를 이루고 있기보다는 주요 야당인 노동당 내 좌파와 녹색당 내 비주류 일부가 이끄는 것이라고 깎아내리고 "우리 역사의 일부를 지우거나 가리려는 스탈린식 활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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