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객 2천명 찾는 동안 피해 할머니 네 분 세상 떠나
시민 239명, 위안부 문제 기억하겠다는 '할머니와의 약속' 낭독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이제 할머니가 마흔 한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서울 남산에 만든 추모공원인 '기억의 터' 첫 삽을 뜨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기억의 터'는 두 달간의 공사 끝에 경술국치일(대한제국이 일제에 국권을 완전히 빼앗긴 날)인 지난해 8월 29일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한해 뒤인 26일 오후 열린 '1주년 기념식'을 박 시장이 다시 찾았다.
그는 "이제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는 서른일곱 분인데, 남은 분들의 기력이 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평화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할머니들이 오래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년간 시민 2천여명이 이곳을 찾는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 네 분이 세상을 떠났다. 기억의 터를 뒤로 하고 역사의 기억 속으로 영면한 것이다.
'기억의 터'는 초등학생부터 위안부 할머니까지 시민 1만9천755명이 3억5천만원을 모금해 만들었다. 서울시는 부지를 제공했다.
'기억의 터'가 자리 잡은 남산 통감관저 터는 1910년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 강제병합 조약 문서에 도장을 찍은 곳이다. 1939년까지 조선총독 관저로 쓰였다.
'치욕의 공간'에 시민들이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세웠다.
추모공원 조성에 참여한 임옥상 화백은 "통감관저 터는 일본군 위안부와 대척되는 관계라 한 장소에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며 "기억의 터는 땅을 전혀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우고 싶은 역사를 다시 세우는 것은 오히려 숭고한 일'이라는 게 임 화백의 말이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증언이 시기별로 새겨져 있다.
'세상의 배꼽'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한글·영어·중국어·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추모공원의 '주인공'인 김복동(91), 길원옥(89) 할머니가 참석했다.
'대지의 눈'에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앞으로 길원옥과 제가 받게 될 배상금을 기부하고, 분쟁지역 피해 아동들을 지원하고 평화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금으로 저의 전 재산 5천만원을 기부합니다"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에 서고, 먼 나라까지 우리 문제를 알리러 갑니다. 내가 일본 정부에 요구한 것은 배가 고파 밥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길원옥 할머니의 말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기억의 터 시민 홍보대사 '기억하는 사람들' 239명은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낭독했다.
이에 화답해 길원옥 할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 '고향의 봄'을 불렀다.
길 할머니는 13세 때 만주로 끌려가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할머니는 지난 14일 세계 위안부 피해자의 날에 서울 청계광장 무대에 올라 뒤늦은 '가수 데뷔'를 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초·중·고등학생과 청년들은 체험 부스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 배우고, '나만의 소녀상 만들기'·'희망 돌탑 쌓기'를 하며 돌아가신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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