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묻힌 광릉, 수십 년간 훼손된 경관 되찾았다

입력 2017-08-27 07:05   수정 2017-08-27 10:24

세조 묻힌 광릉, 수십 년간 훼손된 경관 되찾았다

왕과 왕비 무덤 사이에 있던 수목 제거…"문화유산 가치 제고"




(남양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 이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서서히 훼손됐던 광릉(光陵)의 자연경관이 원형을 회복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광릉은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가 잠들어 있는 무덤이자 조선 최초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동원이강릉은 서로 다른 언덕 위에 왕과 왕비의 능을 둔 무덤을 뜻한다.

문화재청은 광릉의 조경을 복원하기 위해 세조릉과 정희왕후릉 사이에 무성하게 자랐던 나무와 풀을 제거하고 잔디를 심는 정비작업을 최근 완료했다고 27일 밝혔다.

1915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세조릉과 정희왕후릉의 중간에는 나무가 없지만, 현대에 들어 삼림 관리를 하지 않아 왕릉의 제사 건물인 정자각(丁字閣) 뒤쪽까지 나무가 자랐다. 그 결과 세조릉에서 정희왕후릉이 보이지 않게 됐다.

그러나 세조의 아들인 예종과 그의 계비인 안순왕후가 묻힌 고양 창릉(昌陵) 또한 동원이강릉이지만, 왕릉과 왕비릉 사이에는 나무가 없어 상대 무덤이 잘 보인다.





김흥년 조선왕릉관리소 전통조경팀장은 "광릉의 무덤들 사이에 뿌리내린 나무는 소나무, 참나무, 낙엽수 등이 혼재돼 있었다"며 "베어낸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수령이 80∼90년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지키는 관리인 능참봉이 있어서 삼림 관리가 잘됐으나, 일제강점기부터는 한동안 왕릉을 돌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작업을 통해 광릉이 지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릉 경관 회복 사업에는 정자각 앞으로 난 돌길인 신로(神路) 정비, 우물인 어정과 금천교 복원도 포함돼 있다. 또 왕릉 앞에 세우는 홍살문을 지금보다 남쪽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담겼다.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는 "광릉의 항공사진을 보면 과거에는 잔디가 있는 사초지(沙草地)가 부메랑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하트 모양으로 변했다"며 "광릉의 경관 복원을 계기로 다른 조선왕릉의 경관도 원형을 고증해 바꿔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뒤 왕릉 주변의 외래 수종을 잘라내고 우리나라의 고유한 나무를 심고 있다"며 "조선왕릉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관리 계획을 수립해 차근차근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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