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도 있는 사람·어린 왕자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권대웅이 14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시인은 착불로 세상에 왔지만 지불해줄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사랑도 죽음도, 모든 날들은 착불이므로 삶은 일종의 유예받은 시간이다.('착불') 시인은 "슬픔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것을 깨닫는 순간"('바라나시에서의 시') 같은 초월을 꿈꾸는 듯하면서도 너와 나의 현실을 등지지는 않는다.
"소가 달을 끌고 간다/ 느릿느릿 쟁기 하나로/ 어두운 저 무한천공(無限天空)을 갈고 있다/ 걸음이 무거워져 뒤를 돌아볼 때마다/ 달이 자라나고 있다/ 꿈뻑거리는 눈동자가 안쓰러워/ 훠이훠이 소몰이꾼처럼/ 새들의 울음이 밀어주고 가는/ 하늘에 달이 차오를수록/ 소의 등에 앉은 구름이 가볍다/ 커질수록 환해져야 한다는 것/ 둥글어질수록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을/ 달을 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소가/ 저 어둠 속에서 말해주고 있다"('달소' 전문)
문학동네. 104쪽. 8천원.
▲ 파란 구리 반지 = 언론인 출신 작가 손석춘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제주도 씻김굿 형식을 빌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들추고 아픔을 위로한다.
제주도에서 무당의 딸로 태어난 고은하는 교사의 꿈을 안고 대구사범에 입학한다. 조선해방과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인혁과 뜻을 함께 하다가 친일경찰 박병도에게 갖은 고초를 당한다.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가정을 꾸리지만 박병도가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
"한쪽은 민주주의 껍질에 다른 쪽은 사회주의 껍데기에 갇힌 채 갈라진 조국의 과거에 얼마나 위대한 꿈이 약동하고 있었는가를 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이들만이 살인하고 살해당한 혼령들을 구원할 수 있다. 이 기록은 그 갈망의 무리다."
시대의창. 336쪽. 1만5천원.
▲ 알 수도 있는 사람 = "어떤 레이싱이든 배기량 2000㏄ 아래의 차만 참가 가능하며 장소는 참가할 의사가 분명한 회원에게만 개별로 통보한다. 참가비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환하지 않는다. 레이싱 중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95.1㎐에서 자정을 알리는 시보가 터지면 스타트다. 어떠한 기상 상황에서도 출발한다…."
상처입고 소외당한 이들이 모든 걸 버리기 위해 차를 몰고 질주한다. "2012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전민식의 장편소설.
답. 314쪽. 1만3천800원.
▲ 어린 왕자 = '이방인', '위대한 개츠비' 등 명작들의 오역을 지적해온 이정서씨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번역했다.
역자는 프랑스어 원문과 영역본, 기존 한국어 번역을 비교·분석한다. 그러면서 생텍쥐페리가 각각 '너'와 '당신'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tu'와 'vous'를 엄격히 구분했지만 한국어판은 그 차이를 살리지 않았다는 등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새움. 462쪽. 1만4천800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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