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재검토 놓고 여야 공방 재현…방통위, 각계 의견수렴 추진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 경영진 퇴진을 둘러싼 MBC와 KBS의 노사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관계법 개정이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때 사견을 전제로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 등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30일 방통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이던 작년 7월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의 골자는 KBS와 MBC의 이사진을 각각 13명(여당 7명, 야당 6명)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KBS와 MBC 이사는 11명과 9명으로, 여야 비율이 각각 7대4, 6대3이다.
개정안은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야당 추천 이사도 찬성해야 사장을 선출할 수 있는 특별다수제(재적 이사의 2/3 찬성)도 도입하도록 했다. 지금은 과반 의결로 사장을 선임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특별다수제와 관련,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말했다.
개정안대로라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출되겠지만, 이는 자칫 소신이 없고 무색 무미한 인사를 뽑는 것일 수도 있어 과연 이 방안이 최선이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업무보고 당시 토론을 활성화하자는 차원에서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방송법 개정안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도 "당론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개정안을 유지하되 혹시 더 좋은 안이 있으면 보완할 수 있을지 방송통신위나 정부와 협의해 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속내는 방송 장악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5일 공동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권이 결국 '방송 자유'라는 가면을 벗고 '방송장악'이라는 민낯을 드러냈다"며 "코드 사장이 임명될 수 있도록 방송법을 개정하라는 주문 아니냐"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논평에서 "방송법 개정안은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 때 강력하게 요구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제 와서 뒤집겠다는 말 바꾸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권력을 잡고 보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건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의 골간에 수정을 가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의 주시한다면서 실제 움직임이 있으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처럼 방송법을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 정책 등을 총괄하는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안 재검토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지난 7월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안 내용과 다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KBS와 MBC 이사진이 정당 대표로만 구성돼 정쟁의 장이 된다"면서 "일반 대표자도 포함돼 중재를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치권 추천 인사로만 구성된 공영방송 이사진에 중립적인 일반대표 등을 포함해 이사진이 정쟁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방통위는 이를 위해 방송·법률·언론계 인사, 제작·편성 종사자,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된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발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계에서도 '특별다수제'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 방송법 개정안이 결국 재검토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야 간 정쟁이 치열한 국내 상황에서 야당 추천 이사도 찬성하는 공영방송 사장, 여야 모두가 만족하는 인사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9월 정기국회는 물론 올해 말로 예정된 공중파 방송 재허가 심사 과정 등에서 정치권과 언론계 안팎의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youngb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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