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인정할까, 인정하면 어디까지…법원 판단 주목

입력 2017-08-31 05:00   수정 2017-08-31 08:08

통상임금 인정할까, 인정하면 어디까지…법원 판단 주목

대법,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기업 존립 위태' 예상시 통상임금 제외 인정

통상임금 해당·'신의칙' 적용 여부가 관건…'후폭풍' 부담 액수 노사 이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낸 소송은 크게 두 단계 판단을 거쳐야한다.

우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조건을 충족하는지를 판단받아야 한다. 통상임금의 요건을 갖춘 경우라면 이를 인정할 때 받게 될 임금 소급분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수준인가를 판단을 받는 단계가 두번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2013년 12월 18일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 노동자와 퇴직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전합은 먼저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인지 판단할 기준에 대해 "소정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기준에 따라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고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이 합의는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특정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는 합의를 깨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난다는 데 있다.

신의칙이란 '법률관계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사법의 대원칙이다. 모든 법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인 일반 규범이다.

민법의 경우 제2조(신의성실)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는 개념으로 이런 정신이 반영돼 있다.

대법원 전합은 근로기준법 규정과 신의칙 사이에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타협점을 마련했다.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될 기업에 ▲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그 주장은 신의칙에 반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신의칙을 고려해 '통상임금 제외' 합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전합은 먼저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노사 간 임금협상을 해왔고, 이는 이미 관행으로 정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임금협상 경위를 도외시한 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게 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합은 또 "이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며 "이 같은 경우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어긋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전합의 판결 이후 통상임금 소송은 추가로 지급할 임금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준에 이르는지,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정도인지가 중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면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 중 최근 3년치를 지급했을 때 경영상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되는지를 두고 노사가 다투게 된 것이다. 3년 넘게 지난 임금은 소멸시효가 지나 청구할 수 없다.

이번 기아차 사건에서도 노사는 다른 셈법을 내세웠다. 사측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부담액이 1조∼3조원에 달해 경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조는 수천억원대에 그칠 것이라고 맞선다.

한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 하급심에서 잇달아 판단이 엇갈리자 대법원이 더욱 구체적이고 확고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jae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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