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美 경매 사이트에서 낙찰…도난품 소유권 인정 안 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도난당한 조선 인조 계비 장렬왕후 어보(御寶·왕실 의례를 위해 제작된 도장)를 미국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해 국립고궁박물관에 인도한 문화재 수집가가 도난품이라는 이유로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A씨가 "국립고궁박물관에 인도한 어보를 반환하거나 매수 대금 2억5천만 원을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 30일 미국의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일본 석재 거북(Japanese Hardstone Turtle)'이라는 제목으로 경매에 올라 있던 물건을 9천500달러(약 1천69만원)에 낙찰받았다.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자신이 들여온 물건이 인조 계비 장렬왕후 어보라는 것을 확인한 A씨는 같은 해 9월 2일 국립고궁박물관에 "2억5천만 원에 매수해달라"며 어보를 넘겼다.
그러나 박물관은 심의 결과 도난품으로 나타났다는 이유로 매입 대금을 지급하거나 어보를 반환하지 않기로 했고, A씨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어보를 구입한 미국 버지니아주의 법률은 도난품을 취득한 경우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비록 경매 사이트에서 낙찰받았다 하더라도 버지니아주법에 따라 A씨는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우리 민법에 따르면 도난품이라도 선의(법률 용어로는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을 의미)로 매수한 경우 원래 소유자가 대가를 변상하고 물건을 반환하도록 청구할 수 있게 규정하지만, 어보 취득 과정에 버지니아주법이 적용되는 이상 A씨에게 다른 재산권이 인정될 여지도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가로서는 어보를 확보해 보존·관리해야 할 책임을 부담하는 점에 비춰보면 A씨가 어보에 관해 어떤 재산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고, 국립고궁박물관이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채 반환하지 않는 것이 불법행위라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조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어보는 숙종 2년인 1676년 조씨에게 '휘헌(徽獻)'이라는 존호를 올리기 위해 제작됐다. 이후 다른 어보들과 함께 종묘에 봉안돼 관리됐으나 6·25 전쟁 때 도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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