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신고에 의존한 탓에 오류 못 걸러내…항만업계조차 불신
"통계 잘못되면 정책 오류로 이어져, 시급히 개선해야"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우리나라 대표 항만인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통계가 엉터리 수준이다.
개별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실제로 처리한 물량과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터미널 운영사 등 항만물류업계조차 국가 공식통계인 항만공사의 통계를 믿지 못한다며 무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31일 부산항만공사가 물류정보망인 BPA-NET을 통해 발표한 올해 1~7월 물동량과 부산신항과 북항의 8개 터미널 운영사가 밝힌 물동량을 비교한 결과 일부 터미널에서 최대 21만개 이상 차이가 났다.
신항 1부두의 경우 항만공사가 발표한 물량은 20피트 컨테이너 기준 157만2천여개지만 터미널 운영사가 밝힌 실제 처리량은 135만5천여개로 21만7천개나 적다.
반대로 신항 2부두의 경우 항만공사는 268만9천여개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터미널에서 처리한 물량은 이보다 21만개가 많은 289만4천여개였다.
북항의 신선대터미널의 올해 7월까지 실제 처리물량은 128만7천여개인데도 항만공사는 18만3천여개가 적은 110만4천여개라고 발표했다.
북항 신감만터미널이 실제 처리한 물량은 52만2천여개인데 항만공사 통계에는 10만개 많은 62만2천여개로 집계됐다.
항만업계는 "항만공사와 터미널의 물량 집계 시점과 방식이 다른 점을 고려하더라도 공식 통계치가 실제 처리량과 10% 이상 차이 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다"고 입을 모았다.
항만공사와 운영사들은 이러한 차이가 전배 물량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전배란 선박이 애초 접안하기로 한 터미널의 혼잡 등으로 다른 터미널로 옮겨 하역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는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에 따라 선사들이 선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선박이 한꺼번에 몰려 일부 터미널의 혼잡이 심해 전배가 많이 이뤄졌다.
선사들이 이런 전배 물량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애초 접안하기로 한 터미널에서 하역한 것처럼 엉터리로 신고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항만공사는 선사나 대리점이 입출항신고 때 제출한 물량을 근거로 통계를 낸다.
하지만 터미널 운영사들은 현행 시스템이 선사로부터 화물 입출항료를 징수할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물동량 집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선사로서는 부산항에서 하역하는 물량 전체에 대해 돈을 내면 되므로 어느 터미널에서 실제로 하역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애초 신고한 터미널이 아닌 다른 터미널에서 하역하고도 수정하지 않는 일이 잦다. 항만공사는 알 길이 없다.
또 터미널 코드 등을 잘못 입력해도 현행 시스템은 걸러내지 못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개별 터미널의 처리 물량을 통계가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운영사들은 지적했다.
반면 운영사들은 실제로 하역한 물량을 집계하기 때문에 정확하다.
지난해에도 항만공사 통계와 개별 터미널의 실제 처리 물량 사이에 최대 7만7천개 차이가 났다.
물동량 통계는 정부와 항만공사가 항만개발과 운영 효율성 제고 등을 위한 정책과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다.
국내외 학계와 연구기관 등이 항만산업의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를 분석하고 운영사들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따라서 터미널별 통계가 엉터리로 작성되면 자칫 정책의 왜곡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운영사 관계자들은 "항만공사가 발표하는 물동량과 터미널 집계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오래된 문제로 그동안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터미널 운영사 등은 항만공사가 발표하는 통계를 신뢰하지 못해 아예 무시한다"고 말했다.
터미널 운영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물류협회도 운영사들의 실제 처리 물량을 기준으로 회비를 부과한다.
협회는 물동량에 따라 회비를 부과한다.
항만공사 통계와 운영사 실제 처리 물량에 차이가 나는 바람에 논란 끝에 운영사 집계가 더 정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영사 관계자는 "공식 물동량 통계가 이처럼 허술하게 엉터리로 작성된다는 것은 국가적인 망신"이라며 "해양수산부가 구축한 현행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선사들의 신고 정확성을 담보할 방안을 마련하거나 터미널 운영사 집계치와 비교해 보정하는 과정을 거쳐 정확한 통계가 되도록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선사들의 입력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수정할 권한도 없다"며 "그동안 여러 차례 정확한 신고를 선사들에 당부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말에 해양수산부의 시스템이 개선되면 입력 오류를 많이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전의 잘못된 통계는 바로잡을 방법을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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